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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하나님 편에서 죄인들에게 분명히 좋은 소식이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속에서 택하심을 입어 구원에 이르게 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원히 감격적이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겠지만, 구원에서 유기된 모든 자들에게 복음은 아무런 관심이 없거나 한낱 혐오스러운 기독교인들의 궤변 일뿐 일 것입니다. 선명한 복음이 이토록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거부감을 갖게 만드는 것은 복음은 정확하게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죄인임을 결코 숨김없이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우상이 되어 버린 이 인본주의의 바벨탑을 쌓은 시대에 인간의 추악한 실존인 죄와 전적인 타락과 부패와 무능의 상태를 말하지 않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감언이설로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런 부담 없이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만드는 것은 십자가의 가치를 더럽히고 훼손하는 신성모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가 말씀하고 있는 분명한 복음을 전해서 어떤 자가 되었든 간에 그가 자신의 죄악됨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가 되심을 시인하고 믿고 고백함으로 신자가 되고자 하든지, 아니면 복음이 말씀하는 이 진실을 외면하고 교회 문을 박차고 나가도록 만들든지 둘 중에 하나의 결과를 가져오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을 전한 결과 이어야만 합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전령이었던 세례 요한이 전한 메시지를 보십시오. 그의 첫 일성은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메시지는 지엄하신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부드럽고 말랑한 마시멜로 같은 달콤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복음주의는 이 투박한 복음에 사탕을 발라서 전혀 쓰지 않은 부드럽고 달콤한 사탕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만을 강조함으로 복음이 갖는 그 핵심을 교묘하게 은닉시켰습니다. 위로와 사랑과 용기와 축복의 하나님만을 전함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많은 사람들을 솜사탕 같은 유사 복음으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현대적인 악기를 동원한 감동적인 찬양, 위로와 용기와 사랑이 넘치는 메시지, 예수를 믿으면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죄를 짓고, 어떤 삶을 살아도 하나님께서는 다 이해하시고 사랑하시고 용납해 주신다고만 전합니다.

 

물론 복음에 이와 같은 요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메시지가 보다 분명하게 먼저 선포되어야 하고 어떤 내용이, 어떤 대상에게 더 무겁게 강조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러한 방식으로 분명하게 복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순전한 내용들을 결코 변질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시도는 인위적인 것으로 택자나 불택자나 가리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모으고자 하는 일종의 마케팅에 지나지 않은 저급한 일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음 앞으로 나아와야 하고 그렇게 복음을 들음으로써 진정으로 중생하며 회심하는 은혜를 경험해야만 하며, 그것이 예수를 믿는 근본 목적이 아닌 자들은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 걸려져야 마땅합니다. 거룩과 순결, 구원과 영생이 목적이 아닌 자들이 공동체 안에 있으면 결국 그 공동체는 그 모든 거룩하고 순결한 가치들을 훼손시키고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분명하고 순전한 복음을 항상 올바르게 전함으로서 교회의 거룩성과 순수성을 지켰습니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메시지와 세련된 찬양과 문화가 아니라, 오직 복음과 진리, 참된 교리를 투박하게 전함으로 오직 복음과 진리에 반응하는 영혼들을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고 이것에 관심이 없는 자들은 자연히 그 공동체 안에서 사라지도록 함으로써 교회의 거룩과 순수성을 지켜 나아갔던 것입니다.

 

오직 참된 복음만을 전해야 오직 복음으로 기뻐하고 감격해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자들만 남겨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생명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거룩과 순결에 있습니다.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님의 교회 안으로 불러 모이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6 37절에서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고 44절에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내게 올 수 없나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65절에는,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한 장 안에서 주께서는 이렇게 이 말씀을 반복해서 강조하신 것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아오게 하신 자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참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데살로니가후서 2 9~1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순전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복음이란 죄인을 구원하심과 동시에 복음을 거부한 모든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지엄하신 심판이 있음을 선명하게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세례 요한의 설교는 복음의 정수를 매우 간결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의 집사 스데반의 설교나 사도 베드로의 설교 또한 동일한 내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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