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1 21:17
주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제 사명을 다한 요한은 그 무대에서 내려오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사악한 헤로디아의 딸의 요청에 의해서 세례 요한이 넘겨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잡혀간 것은 단순한 구금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기 위해 결박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어리석은 통치자, 헤롯에 의해서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일은 분명 억울한 일이고 옳지 않은 악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악 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을 이제 불러들이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위대한 구속의 계획을 성취하고자 하심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방식입니다. 성도와 교회에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박해와 핍박 속에서 사라져 간 교회들과 성도들을 생각하십시오. 한 시대를 감당하기 위해 그들이 죽음으로써 지불해야 했던 숭고한 사명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우리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으신 주님께서 갈릴리로 되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신 후에 주님은 잠시 유대 지역에 거하시다가 요한이 체포된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 지역으로 거처를 옮기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이제 그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비극적인 죽음이지만 그렇게 그의 역할은 이제 막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반면 이제 주님의 메시야로서의 공생에는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의 시대는 이제 끝이 나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어려움을 당한 세례 요한을 구출하지 않으신 것은, 그리고 공생애에 마침표를 찍으시며 십자가 위에서조차도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신 것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내리친 베드로에게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6장 52~5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흥함과 쇠함이, 살고 죽음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올라가야 할 시점이 있으면 내려와야 할 시점이 있고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우리는 살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뜻을 드러냄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죽을 수 있는 용기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은 남이 아닌 친족이었습니다. 자신의 혈연인 요한이 잡혀 죽임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주님은 매우 침착하시고 담담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슬픔의 감정까지도 억누르며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모습임을 우리는 주님의 모습 속에서 보게 됩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제 주님은 메시야로서의 모든 사역의 출발점이 되는 갈릴리 지역으로 옮겨 가시며 조용히 자신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당시 갈릴리는 변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방으로 많은 이방인들이 이 지역에 유입해 들어와 있었고 따라서 이방의 종교들과 그들의 제사가 널리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갈릴리는 유대 라기보다는 변방의 ‘이방의 갈릴리’로 여겨지던 곳이었습니다. 사람은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요한복음 7장 41절을 보면,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6절은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곳에서 자라셨고 유대의 변방에서부터 마침내 메시야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배경이 중요하고 유력한 환경이나 여건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사람이 생각하는 조건에 전혀 합당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을 통해서 위대한 일들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성공의 조건을 따지려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어떤 자격이나 구색을 갖추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붙드시고 준비시킨 인물, 세례 요한이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모두 그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발탁된 평범한 자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평범함에서 비범함 일들을 이루어 나아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방식이십니다. 성경과 역사를 보면 소수의 사람들이, 아무런 기대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이루며 위대한 사명을 감당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평범한 자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섭리의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