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5 22:22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에서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적인 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복은 하나님 앞에서 그 영혼이 복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충만한 은혜를 누리고 있는 영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복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팔복은 단순히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축복론, 행복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인간들이, 자연인들이 가진 복에 대한 개념을 여지없이 깨뜨리시며 진리가 우리에게 말씀하고 가르치고자 하는 참된 복의 개념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진리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팔복의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어떤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자녀로 부르셨을 때, 우리를 어떤 존재가 되게 하실지를 말씀하고 있는 중요한 진리라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우리는 이 말씀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첫 번째로 어떤 자에게 복이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라고 지목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가난한 자’란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을 뜻하는 명사는 단순히 가난한 정도가 아니라 구걸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만큼 매우 극심한 빈곤, 가난을 가리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의존해야만 하는 매우 가난한, 거지와 같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함이란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심령의 가난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완전히 무가치하며 무기력하며 무능하며 무지한 존재임을 깊이 자각하여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전히 자신이, 자아가, 나의 인생이 파산한 것과 다를 바 없음을 매우 진지하게 진실되게 자인하고 고백하는 비통하고 절망적인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혼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잘못 오해하게 되면 우리가 영혼을 가난하게 만들어야 복이 있는 자가 될 수 있다고 그릇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중생하게 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가장 특징적인 변화가 바로 가난한 심령의 상태가 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팔복의 모든 말씀은 그렇게 살아야 구원을 받고 영생하는 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켜 가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목표를 말씀하신 것이 바로 팔복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성장해 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소원하고 꿈꾸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편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공중의 권세 잡은 이 세상의 임금, 사탄 마귀가 세상을 통해서 이미 정해 놓은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그리고 우리가 진리를 깊이 깨닫고 발견하기 전까지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관점으로 우리의 행복과 그 조건들을 생각하고 갈망하며 살아온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이 정하고 만들어 놓은 행복의 매뉴얼에 길들여진 채로 그것들을 통해서 행복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달려왔고, 지금도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부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행복하고 싶은 것은 존재하는,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입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법과 계명까지 뛰어넘어서 인간은 행복해야 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동성과 결혼을 하건, 짐승과 결혼을 하건 로봇과 결혼을 하건 행복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고집합니다. 이 모든 인간의 주장은 성경을 뛰어넘은 행복론입니다. 세상을 통해서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행복의 조건들을 학습하게 됩니다. 그것이 성경의 진리와 부합하던 그렇지 않던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미 행복의 주체는 나,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나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고 방해하는 것을 용납하려 들지 않습니다.
성공을 통한 부와 명예, 풍요와 자유,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연인, 결혼, 자녀 등등의 우리가 바라고 소유하고자 하는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행복을 갈구합니다. 인간의 최대 관심은 행복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제는 궁극의 행복을 만끽하고 살아가면서 자신은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모든 행복은 순간에 지나지 않고 가장 행복한 순간의 바로 그 이면에도 불안과 염려,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왜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진정한 행복이 존재하지 않으며 죄 아래 모든 인간은 피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과 결핍과 상처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불안과 두려움, 염려와 근심과 슬픔과 갈등과 마음의 고통과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주의 은혜 속에서 영혼의 평안과 자유와 기쁨을 누릴 때도 있지만 그런 우리의 영혼의 상태는 결코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쉬 깨어지고 무너지며 항상 가변적입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리스도인의 궁극의 행복은 이 땅에서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궁극의 행복은 저 멀리 궁극의 미래를 바라보고 소망하며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는 가치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진리의 깨달음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 간절히 바라보고 생각함으로 그것이 점점 확신으로 우리 안에 채워지게 될 때 우리 마음에 차오르는 그것입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한 존재가 되고자 할 찌라도 인간은 인간 안에서 스스로 결코 그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