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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띄우는 목양서신40

2018.03.20 13:02

solafide1004 조회 수:1165

<아침에 띄우는 목양서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43, 개역한글)

십자가 위에서 완전한 대속을 이루시기 위해 모진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고 계시던 주께서는 이제 얼마남지 않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간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하셔서 마지막 사명에 집중하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한편 강도의 영혼을 낙원으로 이끄시는 일 이셨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그의 말에 주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라고 말씀하시며 이 약속의 주체와 객체를 분명히 밝히시고 매우 확고하고 진지하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셔야 할 그 영혼에게 가장 소망이 넘치는 확답을 남기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극적이고 감격적인 선언이 바로 여기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온몸을 관통하며 엄습하는 그 상상하기 힘든 고통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시면서도  주께서는 가련한 한 영혼을 천국의 명부에 기꺼이 등재하셨습니다.
메시야의 위대한 죄사함과 구원의 권능을 발휘하사 그를 지옥의 음부에서 낙원으로 이끌어 올리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께서 무엇에 집중하셨는지를 이 구절은 우리에게 큰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던 육신이었지만 메시야의 이 선언을 들은 한 편의 강도는 그야말고 형언할 길이 없는 감사와 기쁨 속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았을 것입니다.

주께서 그토록 죄인들의 가슴속에 안겨주고 싶으셨던 것은 바로 영원히 빛나는 천국의 기쁨과 영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신자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늘에 속한 기쁨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경험할 때 비로소 세상을 위해 살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살 수가 있습니다.

왜 예수를 믿어도 우리는 삶에 무거운 짐에 눌리고 고통 당하며 죄악에 넘어지고 좌절하는 삶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방불한 삶을 살며 세속의 아름다움과 쾌락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모든 이유는 낙원에 대한 진정한 소망과 확신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지 않으셨습니다. 
택하신 자녀들을 이 세상의 복락이 아닌 영원한 낙원으로 부르시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버려 대속의 재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분의 구원의 보증과 영생 얻게 하시는 효력은 확증적이었으며 비가역적인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시면서까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이 위대하신 구령의 역사는 주께서 이 땅에서 어떤 일에 가장 큰 사랑과 열정을 발휘하셨는지, 그것을 증명하고 보여주시는 눈물겨운 증거이셨습니다.

그토록 우리의 영혼을 보존하셔서 오늘도 낙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견인하기를 기뻐하시는, 이 일에 매우 유능하신 분이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조차 자신의 몸을 버리시면까지 집중하시고 이루신 그 위대하신 사명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지마십시오.

죽음이 임박한 그 고통의 한계점에서도 택하신 영혼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품으로 인도하시는 일에 모든 힘을 다하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우리 또한 참된 복음을 통해 오늘도 지옥의 명부에서 천국의 명부로 옮겨져야 자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순간에 홀연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될지 알수 없지만 우리가 가장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가장 열렬한 구령의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던 그 어느날에 우리도 주를 뵈옵게 되기를 앙모합니다.
그렇게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명에 집중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주의 도우심과 은혜를 간구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도 죄인을 찾아오셔서 그에게 영원한 낙원을 선언하기를 기뻐하시는 놀라운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이 우리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는 은혜가 우리모두에게 충만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