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설교 한토막>
강력한 악의 동맹은 치밀하게 움직였습니다.
도비야와 동맹을 맺은 유다의 유력한 자들은 도비야의 선행을 느헤미야에게 부지런히 고했습니다.
협박이 통하지 않자 그들은 우호적인 방법으로 친선을 도모하며 회유하는 작전을 구사했습니다.
사실은 도비야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고 그와 손을 잡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부단히 유다의 귀족들이 느헤미야를 설득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판단을 교란하려는 의도로 이렇게 내통자들은 도비야를 미화하면서 느헤미야의 생각을 돌려 보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도비야에 대한 경계심을 풀도록 해서 결국 그들의 악한 뜻이 이루어지도록, 내통하는 자들은 그렇게 느헤미야를 회유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느헤미야의 일거수 일투족을 도비야에게 모두 보고 했습니다.
그렇게 도비야의 눈과 귀가 되어서 악한 일들을 도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치밀하게 움직인 모든 이유는 단 한가지 느헤미야를 두려움에 빠뜨리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두려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는 이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신자와 교회에게 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두려움에 몰아 넣으면, 두려움에 빠지게 되면 교회든 성도든 세상의 뜻대로, 사탄 마귀가 원하는대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믿음의 길을 좌절시킬 수 있고 교회와 신자가 그 사명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도록 억압할 수 있으며 우리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만들고 하나님께서 마치 멀리 계시는 것처럼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성도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강력한 두려움이 엄습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두려움에 빠뜨리는 것..!
위대한 구속사의 물줄기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서 모든 시대 속에서 진행되고 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는 설교를 통해서 여전히 구령의 역사가, 회심과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목적이고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하늘의 양식을 통해서 생명을 수혈 받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이제껏 누구도 이 예배를 가로 막거나 목사의 입을 막은 일이 없었는데
한국교회는 몇 년 동안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 목사의 입을 가리려는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두려움 속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감염이 되고 있다는 현실 속에서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아 넣으려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두려움에 짓눌린 교회와 성도들은 이제껏 가보지 않은 길을 대범하게 선택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누가 승자가 되었습니까..
이 훼손되어버린 예배는 이제 어떻게 복원될 것이며 극단의 양쪽으로 분열된 성도의 무너진 교제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깊어진 그 골은 이제 어떻게 메워야 할까요..
무엇이 중요한지를 놓치면 죽습니다.
두려움에 질식되어 죽게 됩니다.
그 두려움을 믿음으로 압도하지 못하면 교회와 성도는 세상에게 패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우리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약속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는 기도로 모든 위기를 풀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기도로 모든 어려움을 돌파 해 내도록 그를 준비시키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준비되고 있습니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하고 하늘 아래 누구도 나를 도울 자 없을 때 오직 골방에서 간절한 눈물의 기도로 길을 여는 그 믿음이 준비되고 있습니까..
엄습하는 두려움 속에서 느헤미야는 하늘을 향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나의 손에 힘을 주십시오.’
엄습하는 두려움이, 걱정이, 미래에 대한 근심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도 예배당에 나와 홀로 하나님을 찾는 이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목놓아 부르며 그 두려움을 능가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적 평강과 마음의 평안과 영혼의 넘치는 희열을 오늘 우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두려울 때마다 도망치겠습니까..
두려울 때마다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사는 길을, 세상이 말하는 인간의 도리만을 좇겠습니까..
그것은 신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 결코 아닙니다.
두려움의 이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인생이 지나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세상이 주는, 사탄 마귀가 우리를 옥죄는 이 두려움의 문제를 우리에게 허용하시고 우리를 지켜 보시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의 문제를, 이 시험지를 우리가 어떻게 풀어갈지를 하나님께서 주목해 보십니다.
우리는 모두 답을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해답 대로 그 두려움의 문제를 다른 대상에게로 가져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앞에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두려움이 이기는지, 하나님을 생애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그 놀라운, 우리의 영혼을 압도하시는 은혜가 이기는지를 여러분 자신을 상대로 시험해 보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