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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129

2022.08.23 07:10

hi8544 조회 수:1907

<묵상, 설교 한토막>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연민입니다. 지독한 자기 사랑입니다.
진정으로 교회를 주님을 사랑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것을 빙자해서 사람들이 더 나를 알아 주기를 바란 것입니까..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 이라면 우리 자신부터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진정 주의 뜻이라면, 주를 위한 일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저를 밟고서라도 하나님께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던져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만을 소원하는 그 자기부인이 반드시 우리에게 진행되고 나타날 때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 내가 아닌 그리스도만을 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는 척하지만 정작은 나를 위한, 나를 더 사랑하는 그 아집과 위선에서 벗어나십시오.
그것은 그리스도 뒤에 자신을 숨기고 자기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나를 버리고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헌신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개혁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성벽이 성전이 재건되는 것으로 모든 회복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깊이 자기들의 신앙과 삶을 들여다 보면서 감추어졌던 모든 죄와 그릇된 부분들이 모두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영적인 수술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부족과 감추어진 죄악들이 온전히 드러날 때 우리는 진정으로 회복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부흥은 영적인 각성과 총체적인 영혼의 기경입니다.
모든 죄와 허물과 우리의 지난 날의 무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우리가 더욱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것이 바로 부흥이며 그 부흥의 열매입니다.
한마디로 개혁되는 것입니다. 살가죽을 벗겨내고 더 새로워 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 개인에게 영적인 부흥을 허락 하시는 궁극의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모습 속에서 이전에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던 나의 죄와 연약과 강퍅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은 여전히 자기 자신만을 더 사랑하고 있을 뿐인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대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위해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오늘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모든 버겁고 무거운 십자가를 내가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은 한없이 무겁고 피하고 싶은 짐으로 여기고 있는 나를 정직하게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는,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나를 진실되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이미 오래 전에 재건되었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의 봉헌식까지도 하나님께 드려지게 되었어도 그들의 영적인 수술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우리는 계속 개혁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경과 교리를 알고 그에 박식하다 해도 우리는 결코 완전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깨어져야 하고 다듬어져야 하며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존재인지를 매일 매일 절감해야 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벽을 재건하고 봉헌식을 하고 하나님을 올바로 신앙하기 위한 모든 조치들과 제도들을 세우고 성전을 지원하는 모든 일들을 자원해서 다짐했지만 이스라엘은 또다시 흔들리고 개혁이 추춤하는 모습이 바로 느헤미야 마지막 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다시 이들의 느슨해진 허리띠를 졸라매며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고 여전히 우리들의 신앙의 불완전함을 안타까움 속에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가운데서 영원한 나라,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만을 소망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한 때에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했던 설교자들이 목회를 하고 그토록 큰 부흥을 경험했던 유서 깊은 유럽의 교회들이 지금은 모두 어떻게 되어 버렸습니까..
관광지로 전락하고 배도의 시대 속에 흉물스런 고대의 유물로 취급 당할 뿐입니다.
 
이것이 지상의 교회의 모습과 그 한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흥과 쇠퇴와 몰락과 심판이 역사 속에서 반복될 뿐입니다.
다만 우리가 받은 그 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신앙하고 부흥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진지한 갈망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를 하나님께서는 주목하실 것입니다.
 
지상에서 완전한 교회는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한 순간의 신앙의 그 뜨거움과 간절함 조차도 계속 지속하기에는 결코 부족한 존재임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와 지체들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시겠습니까..
 
그것이 불완전한 인생이며 이 지상 교회의 피할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완전히 개혁된 것 같으나 또다시 무너지고야 마는 그것이 이 땅을 지나가는 신자들과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바로 성경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완전히 개혁되고 나면 그 다음은 그것이 얼마나 더 유지되고 이어지리라 생각되십니까..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고 이 땅에 카톨릭으로부터 개혁된 교회가 세워진 이후로 오늘의 교회는 도리어 종교개혁 시대의 카톨릭 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더 부패한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개혁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아무렇게나 믿고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의 시대에 우리가 믿는 복음을 붙들고 다만 우리는 우리가 이처럼 불완전할 지라도 하나님을 바르게 신앙하기 위해 노력하며 계속 개혁을 이루어 나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다음 또 어떤 미래가, 어떤 몰락과 침체의 역사를 써내려 가게 될 지라도 모든 결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되어질 것을 믿고 너무 멀리를 바라보거나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보지 않고 오늘도 자신의 믿음과 내가 지체로 몸 담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계속 그 개혁이 지속되기를 기도하면서 우리가 받은 시대에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임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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