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설교 한토막>
불량하고 악한 자들의 또다른 특징은 그들의 모습과 행동에서 잘 드러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의 눈으로 가늘게 하며 그의 발로 말하며 그의 손가락들로 가르치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그들이 모의한 악한 계략을 실행할 때 자기들만의 은밀한 신호를 사용합니다.
눈을 가늘게 한다는 말은 기만적이고 사악한 뜻을 가지고 눈짓으로 사람을 속이며 자기들끼리 은밀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악인들은 그렇게 사악한 눈짓을 주고 받습니다. 혹은 손과 발을 써서 신호를 보냅니다.
이는 악한 계략을 실행하면서 선량한 이웃을 해칠 때 그들이 주로 하는 행동들입니다.
진리의 편에 선 정직한 사람은 눈짓을 하거나 손짓 발짓을 하면서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기만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에게는 불필요한 행동이고 몸짓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이웃 사랑의 대의를 비웃는 죄악이며 악을 도모하는 패역한 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악인들은 이렇게 은밀하게 악한 계획과 뜻을 이루어 가야 하기 때문에 궤휼한 입을 사용하고 눈짓과 손과 발로 그들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이용합니다.
이어지는 14절을 보십시오.
‘그의 마음에 사악함들, 모든 때에 악을 도모하며 그가 다툼들을 내보낸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패역’ 으로 번역된 원문의 단어는 심술궂고 고집이 센 자를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사악한 악인의 내적인 상태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들,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진리를 멸시하며 자기본위로 살아가는 자들 안에는 언제나 그 마음에 사악함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을 때, 양심이 화인 맞은 자들은 언제나 그 마음이 선하고 정직하며 올바른 방향을 향해서 움직이지 않고 언제나 사악한 것을 향해서 그 마음이 달려갑니다.
모든 순간에 악한 길로 행하고 하나님의 법을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에 죄악된 모든 수단과 방법들을 동원합니다.
자기의 이익을 쟁취하는 수단은 다툼이 됩니다. 언제나 악인이 있는 곳에서는 다툼이 일어납니다.
가정과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며 혼란과 고통을 가져옵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분쟁이 일어나고 갈등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그가 문제를 풀어가며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입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입니다.
그가 교회를 다니는 성도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삶이 이러하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악이 지배하고 있는 사람은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악이 잠시 동안 득세하여 죄를 범하게 할지라도 신자는 죄악에서 돌이켜 자신의 마음과 행위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기며 하나님께 즉시 회개하게 됩니다. 그의 양심이 괴로워서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 악을 행하면서도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 악함이 고질적으로 그의 삶 속에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일 수 없습니다.
그런 자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이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에, ‘그러므로 갑자기 그의 재앙이 올 것이다. 그가 불시에 산산조각 날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량하고 사악함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안겨준 그 결과는 그가 하나님의 미움과 저주를 받아 예기치 못한 때에 재앙이 그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 할 모든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그 모든 시간들을 다 허비하고 끝까지 악행을 일삼아 돌이키지 않은 결과는 그가 어떤 도움도 얻지 못하고 졸지에 패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패망하다 라는 의미는 부러지다 라는 뜻인데, 심하게 부서진 난파선처럼 되거나 혹은 목이 부러진 경우를 가리킵니다. 그의 인생이 산산조각나 버리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량하고 악한 자, 패역하여 항상 악을 꾀하고 다툼을 일으키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지엄하신 진노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자들은 이렇게 그 모든 악에 대해서 하나님의 이같은 보응을 받게 됨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는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그 악함이 그 사악한 죄성이 전혀 변화되지 않는 경우들을 봅니다.
고질적인 죄가 계속해서 점점 주의 은혜로 소멸되고 성화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극악함이 전혀 해결되지 않고 도리어 더욱 발전해 나아가는 삶을 봅니다.
진정으로 돌이켜 그 죄를 회개하고 거듭난 성도의 모습을 갖지 않게 되면 그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성화의 열매가 구원 받은 성도에게는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신자가 불신자처럼 악을 행하고 분노하며 입술로 죄를 범하고 행동으로 삶으로 여전히 죄악과 친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이는 결코 참된 믿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잠언 강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