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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19

2022.12.27 08:24

hi8544 조회 수:1360

<묵상, 설교 한토막>


‘때가 차매’ 라고 성경은 기록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때는 주께서 오심에 필요한 모든 여건과 환경과 상황이 모두 준비된 때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되기 위한 상황과 환경이 모두 갖추어진 때가 왔을 때 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는 당시 정복 전쟁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사방으로 난 잘 정비된 도로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도로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닦여진 것이었지만 이 도로를 이용해서 많은 여행자들이 먼 거리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는 헬라어가 국제 표준어로 사용되고 있었고 근동 지방에서는 아람어가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와 아람어로 기록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더욱 복음 전파가 용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은 나라가 망한 지 400년이나 지나가는 동안 계속 이방 나라의 지배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당시에는 가장 강력한 패권 국가였던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 어떤 때 보다 더욱 메시야를 고대하고 갈망하는 그들의 마음의 정서가 간절했던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기 가장 적합한 시기로 하나님에 의해서 모두 준비되어졌고 그렇게 모든 준비가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셨고, 또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고, 성경은 이 두가지 의도가 모두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평범한 시골 출신의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우리와 같은 육체를 지니신 메시야로 이 땅에 임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그가 우리를 위한 영원한 대속주가 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 태어나셨습니다. 즉 율법의 모든 의무를 지켜야 하는 존재로, 즉 유대인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고 태어나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율법을 모두 지키셨습니다.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으셨고 유월절 절기를 지키셨으며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며 인생을 살아가셨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자기들의 의를 삼고자 율법을 지키신 것이 아니라 율법 속에 담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시면서 율법을 준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완성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같은 율법을 준행하는 삶을 온전히 사신 이유를 이어 설명하기를,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는 영원히 그 죄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원히 그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이제 더이상 율법 아래서의 종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인해서 영원히 우리에게 아들의 명분을 주시기 위해서, 즉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완전하신 인간으로 율법 아래에 오신 것이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죄책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가 율법의 정죄를 우리의 양심이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를 범할 때마다 심각한 죄책과 괴로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선명한 죄의식은 가지고 있으면서 죄책으로부터는 자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고 완성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진정한 영혼의 자유와 해방의 의미를 올바로 알지 못하거나 그로 인해서 진정으로 영혼의 평화와 자유함을 맛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그것이 성령을 통해서 가슴으로 와 닿지 않으면 그렇게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자신을 사랑하는 이 모순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은 우리를 율법 아래서의 정죄에서 영원히 해방하시기 위함이며 이제는 율법의 종이 아닌 이신칭의의 은혜 아래서 아들로, 하나님의 양자로 일컬음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이 위대한 특권을 주시기 위함이셨다는 것을 우리는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