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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68 (잠 9:1-6)

2023.03.16 07:23

hi 조회 수:2014

<묵상, 설교 한토막>


지혜의 여인이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기둥이 일곱이나 되는 큰 집을 짓고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서 잔치를 배설하고 있습니다.
짐승을 잡고 그리고 포도주를 준비합니다. 정성을 다해서 연회를 마련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는 언제나 풍성하게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며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유익을 주고자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지혜는 결코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진심으로 간절히 구하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준비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진리 안에서 진정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에 힘쓰고 최선을 다하며 지혜를 구하는 자들을 위해서 넘치도록 아낌없는 지혜를 그들에게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두시는 아버지이심을 기억하십시오.

그 지혜를 얻고자 하는 자들이 많지 않기에 오늘도 지혜를 얻는 자들이 소수일 따름이지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하나님 앞에서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그 길을 지혜로 인도하시고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그에게 지혜와 명철을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혜는 그 찾는 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집을 짓습니다. 그 집은 일곱 기둥들로 떠 받쳐지고 있습니다.
일곱개나 되는 기둥이 세워진 집 이라면 작은 가옥이 아닙니다. 궁전이나 신전과 같은 크고 웅장한 규모의 건축물을 의미합니다.
 
지혜는 매우 큰 규모의 집을, 지혜의 전당을 짓고 그곳에서 잔치를 배설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짐승을 잡아 성대하게 요리를 하고 그리고 포도주의 맛을 높이기 위해서 좋은 포두주를 블랜딩 합니다.
포도주를 혼합한다는 의미는 포도주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 꿀이나 향료를 첨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지혜의 전당에 만찬상을 마련하고 고기를 잡으며 포도주를 준비하는 지혜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지혜를 추구하는 자들의 영혼이 이같이 풍요롭고 풍성한 유익을 얻게 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우리의 영혼과 내면을 이같이 풍성하게 채우며 모든 필요를 넉넉히 공급할 만큼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구할 때, 지혜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알아갈 때 우리는 영혼의 풍성한 양식과 음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영혼이 잘되는 것이 범사가 잘 되는 첩경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깨닫는 것을 그 무엇보다 사모하고 이것을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강조하여 말씀드리지만 지혜를 구하는 이들은 결코 다수가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만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라 진리 속에서 깊이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 안에서 그 지혜의 근원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하기에 지혜는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는 여종들을 보내어 성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돈과 인기와 명예와 권력을 보장해 주겠노라고 장담하면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지혜의 초대에 관해서 무관심 합니다. 
그 이유는 지혜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혜를 얻기 보다는 돈과 안락과 육체적인 편안함을 더 추구합니다.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들을 갈구하는 일에 언제나 멈추지 않는 욕망을 드러낼 뿐입니다.
 
지혜는 그 여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리석은 자’ 란 신중함과 이해력과 통찰력이 결여된 자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은 모두 어리석은 존재에 지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죄인들이 지혜로워 지는 길은 참 지혜와 진리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죄에서 돌이키는 것으로 사망의 길, 영벌의 길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는 그 어리석은 멸망의 길로부터 방향을 전환해서 지혜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로 돌이키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교훈은 생명의 진리로 어리석은 자의 영혼을 깨우쳐 영생으로 인도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이 생명을 진리 안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기만 하는 것은 종교 생활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진리 안에서 그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붙잡히는 것입니다. 
그 길이 진정으로 어리석음에서, 영벌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이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게 되면 결국 신앙을 버리게 되고 배도하는 자리에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결국 어리석은 선택과 결정을 내리게 되고 흘러 떠내려 가는 자들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혜를 만나야 합니다. 반드시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자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