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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81 (히 7:18-28)

2023.04.04 07:05

hi 조회 수:2118

<묵상, 설교 한토막>


모세의 모든 율법이 폐기되고 이제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잇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언약이 주어졌으며 우리는 바로 그 새언약 아래 있는 백성이라는 점을 히브리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연히 히브리인들의 유대주의로 다시 돌아 가려는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경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옛 언약, 율법에 대해서 ‘연약하며 무익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모세의 모든 율법은 이제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부여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언약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무가치하며 구원을 위해 더 이상의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임을 히브리서는 분명하게 선언해 주고 있습니다.
 
새언약 아래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 율법은 완전히 폐기되었고 그 효력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바는 율법은 여전히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며 죄의식을 가지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도록 성도의 삶을 지도 해 주고 있음에 대해서 율법의 기능은 여전히 존재함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흔한 오해는 율법은 이제 모두 폐기 되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이 옛언약은 이제 쓸모없는 것이 되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이제 이 땅 가운데서 어떤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율법은 여전히 가장 훌륭한 스승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일에 합당치 않은 이유로 신자가 예배를 빠지면서도 스스로 이에 대해서 자신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하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신앙의 자유함이 아니라 방종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분명히 죄라 명한 것을 어김으로 자신이 죄를 범하고 있음에도 자신은 율법주의를 배격한다는 이유로 이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율법폐기론이나 반율법주의의 그릇된 신앙에 경도된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모든 율법은 이제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대속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으로 인해서 율법이 가지고 있던 구속력이 완전히 폐기되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한다고 선포합니다.
무엇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까?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온전히 회복된 관계를 이루게하는 일에 대해서 율법은 결코 이것을 성취할 수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며 죄를 억제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죄인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할 성도의 구별된 삶을 조명해 줄 수는 있어도 율법은 결코 하나님과 죄인들의 단절된 관계를 이어줄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이제 율법은 연약하며 무익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좋은 소망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고 히브리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소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로 메시야의 오심으로 인한 궁극의 대속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메시야의 출연으로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다시 모든 관계가 회복되게 된 바로 새 언약의 본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오히려 죄인들을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하며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정죄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언약의 은총은 우리에게 더욱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특권을 마침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된 아름다운 특권을 깊이 이해하게 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떤 죄 가운데서라도 우리의 어떤 연약과 허물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아들이 잘 안다면 아버지가 비록 진노하셨을찌라도 집을 뛰쳐 나가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 내가 아는 아버지는 즉시 화를 거두시고 나의 죄로 인해서 결코 나를 향한 사랑까지 포기하는 아버지가 결코 아니심을 확신하는 믿음이 아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어도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용기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아들을 향한 사랑과 인자와 긍휼과 자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께로 나아오는 모든 죄인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긍휼과 용서와 자비를 보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