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2 08:10
<묵상, 설교 한 토막>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창세기 12장 1절의 말씀처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는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을 향해서 나아갔는데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순종하여 그 미지의 땅으로 떠났습니다.
노아와 아브라함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알지 못하는 일을 했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로서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다 아는 것, 다 보이는 것, 얼마든지 계산이 되는 것을 행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거기에는 믿음이 필요치 않습니다. 믿음은 알지 못하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르지만 내게 익숙한 곳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것이 분명할 때 움직입니다. 이성적으로 충분히 따져보고 계산을 해 보고나서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자기 자신의 판단과 경험만을 의존할 때 충분히 그렇게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면 그의 생애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약속을 믿고 사람의 생각과 판단과 예측의 영역 너머의 일들을 결행하게 됩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이 있을 때의 삶과 믿음이 없을 때의 삶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우리의 삶은 믿음 이전과 이후가 분명하고 확연하게 구별되고 있습니까.. 믿음이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말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떠날 수 있는 바로 그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사실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그렇게 했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이끌려서 그렇게 순종함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모습만 믿음이 아니라 그가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도 성경은 그것을 믿음으로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를 오래 믿어 그 믿음이 장성할 때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주의 부르심에 응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첫 발걸음을 교회로 옮기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그 믿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라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1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홀로 있을 때, 그가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할 때 그를 부르시고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그 주신 분이 우리 안에서 자라게 하고 강건하게 하며 굳세게 하시는 영혼의 씨앗입니다.
여호수아 24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전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였습니다. 그에게 찾아오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믿음을 주셔서 구원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신 은혜가 없었다면 그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우러러보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결코 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실만 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시고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나아가 그가 믿음의 조상이란 칭호를 얻기까지 그의 믿음을 성장시켜 나아가고자 하심이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꾸 사람을 높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칭송하고 싶어 합니다. 그를 그렇게 이끌어 가신 분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그에게 어느 날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벌레보다 못한 저에게도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그것이 이 자리에 지금 우리가 있는 이유입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그 믿음을 받아 긴 신앙의 여정에 들어선 모든 이들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하나님의 지극히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아직 믿음이 깊지 않아 여러 가지로 불안하고 두려우십니까,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염려스러운 분들이 계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도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그를, 그의 믿음을 성장시켜 나아가셨고 먼 훗날에는 그가 자기의 하나뿐인 아들을 하나님께 기꺼이 제물로 드릴 수 있을 만큼의 믿음의 장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단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성실하신 하나님의 열심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그렇게 이끌어 가셨다면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도 그렇게 이끌어 가실 것임을 믿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