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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356 (히 11:13-16)

2023.07.18 08:13

hc 조회 수:923

<묵상, 설교 한 토막>

 

우리는 세상에서 주인공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성공과 출세를 목표로 삼지 마십시오. 과도한 탐욕과 욕망이 우리의 영혼의 타락과 부패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고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가 맛보게 될 그 궁극의 영광을 묵상하고 생각하십시오. 지금이 아니라 앞에 있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먹이고 입히시며 여러분의 삶을 통치하시고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 대한 건강한 신학을 가진 자들입니다. 바울의 죽음 신학을 보십시오. 바울은 빌립보서 1 21절에서,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라고 말하며 그는 죽음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죽음을 그는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 줄 마침표로 여기고 있는듯합니다.

 

디모데후서 4 7~8절을 보십시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으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생의 달려 갈 길을 다 가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날이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큰 상을 얻게 되는 날이라고 매우 들뜬 가운데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 54~55절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당하게 죽음을 호령하며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탁월한 죽음에 대한 그의 해석과 이해를 보십시오. 이것이 믿음을 따라 죽는, 믿음을 간직한 채 마지막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의 모습이며 영원한 그 미래적인 약속을 바라고 소망하며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의 고백입니다.

 

웨스트 민스터 소요리 문답 37문은 죽음이 신자에게 의미하는 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신자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 가운데 들어가고 그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하여 부활할 때까지 무덤에서 쉰다.’ 이것이 죽음 신학입니다. 신자는 죽음이 의미하는 바 이 모든 아름다운 결과를 알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것을 안다면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바울이 말한 바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고린도후서 6 9~1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