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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436 (단 1:1-7)

2023.11.21 08:17

hc 조회 수:704

<묵상, 설교 한 토막>

 

다니엘을 통해서 이 성경이 쓰여진 목적은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주권자이심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당시 바벨론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모든 성전 기구들을 강탈한 후에 자신들의 신이 여호와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포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호와 유일신 사상은 바벨론에 의해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하심 속에 멸망을 당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멸시하며 이스라엘을 우습게 여기던 강대국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두렵고 떨림 속에서 나타내기 원하셨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들의 신이 자신들을 강대하게 만들었다고 여기며 끝없는 오만에 취한 패권국가들의 그 기고만장함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소수의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 자들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고 두려우신 존재인지를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임을 나타내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 일에 쓰임을 받게 된 자들이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거짓된 신들과 달리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참된 통치자이심을 밝히기 위해 일련의 놀라운 기적과 이적과 권능을 행하심을 소개하고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에게 대해서 계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세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강력한 패권 국가였던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최고 권력의 그 중앙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가운데 가장 위대한 권능의 소유자 이심을 직접 드러내셨고 이를 통해서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뇌리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누구이신 지를 깊이 각인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니엘서 안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이적과 기적은 바로 그 같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과 권능과 위엄을 이방 나라와 민족들 앞에 드러내시기 위함이셨고 바로 그 일에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신 이유는 백성들의 범죄를 용납할 수 없으셨던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때문이었지만 그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언약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이방인들에 의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게 되는 빌미로 이용되자 하나님께서는 거짓된 우상의 소굴의 그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드러내시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무이하신 절대적 주권자이시고 이 온 세상의 통치자 되심을 나타내신 것이 바로 다니엘서의 핵심입니다.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이방의 여러 왕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께 굴복당하는 장면들이 바로 이 같은 이유로 다니엘서 안에 등장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 7배나 뜨거운 풀무불 속에 들어간 다니엘의 세 친구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이 왜 그런 일들을 당해야 했는지,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과 뜻을 가지고 이러한 일들을 그들을 통해서 행하셨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이해할 때는 그 시대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뜻하신 바는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야 오늘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성경을 통해서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이 세상이 하나님을 짓밟고 그 말씀의 권위를 훼손하며 십자가의 도를 무시하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본주의의 하나님의 절대 진리가 사람들에 의해서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인본주의의 우상이 모든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흡사 이 시대 역시 다니엘이 살았던 때와 다르지 않는 영적인 암울한 현실을 우리는 대면하고 있습니다. 항상 세상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반감을 드러내 왔습니다. 그것이 때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 세상은 더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교회와 성도를 억압하고 자기들이 만든 틀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일들을 행하곤 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세상의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나 시대의 정신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것에 굴복하기를 원합니다.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시대가 주도하는 모든 정신과 사상에 동조하기를 요구합니다.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도덕의 기준, 윤리의 기준, 법의 기준이나 교육 정책, 나아가서 어떤 유행이나 문화적인 흐름을 우리가 거부감 없이 수용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정한 모든 것들을, 모든 질서들을 그냥 무조건 닥치고 따르라고 윽박지릅니다. 원활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우리의 종교적인 신념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어기는 일들을 각오해야 하고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함께 지키고 그것을 포용하고 용납할 것을 강요받게 됩니다.

 

어떤 시대든, 특별히 박해를 당하던 시대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세상에 굴복하고 결국 세상의 일부가 될지 아니면 이 세상을 거부하며 힘든 길,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할지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세상이 만들어 낸 모든 법과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규범과 정신을 들이밀면서 우리에게 이것들을 수용할 것을 요구할 때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을 극복해야 할지를 우리는 이제 이 다니엘서를 통해서 그 해답을 얻기를 원합니다. 어떤 시대이든 성도와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의 안위와 영광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 그 이름에 합당한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또다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더럽히고 그 이름을 지워 버리려는 참람한 악을 저지르는 이 세상에 대해서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처럼 거룩한 선전포고를 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채 이방의 나라에서 온갖 악을 강요당하고 괴로움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바로 이 다니엘서는 쓰여졌습니다. 다시 우리에게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고 우리가 그 모든 일들을 이 세상에서 겪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을 대처해야 할지를 그 지혜를 성경의 진리 안에서 얻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