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6 08:19
<묵상, 설교 한 토막>
마침내 ‘그때’ 가 임하게 됨을 기억하십시오. ‘크로노스’의 흘러가는 평범한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의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때, 그 시간이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렇게 되어지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십니다. 요셉이 마침내 감옥에서 나와 애굽의 왕 앞에 서게 될 날이, 마침내 그날이 기어이 임하게 되었듯이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호 카이로스’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고 그 일이 우리 앞에 주어지게 되는 때가 도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이 명한 3년의 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왕 앞에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환관장은 왕이 명한 과업을 모두 완수하고 이제 그들을 대동하여 앞 앞에 도열했습니다. 왕은 이제 유다에서 온 귀족과 왕족 출신의 젊은이들이 바벨론의 학문을 통해서 얼마나 뛰어나게 잘 준비되었는지를 테스트하게 됩니다. 왕은 그들이 배운 모든 것에 대해서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져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무리들 중에서 그 실력이 매우 출중한 네 사람의 소년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보니까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 보다 열 배나 그들은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수와 술객은 바벨론 왕국에 있는 모든 점술사들, 주술가들을 가리킵니다. 얄팍한 속임수를 쓰거나 귀신의 힘을 빌리는 자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출중한 지혜와 명철을 지닌 다니엘과 세 친구가 왕에 의해서 발탁되는 극적인 시점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모든 기회들을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때를 위해 필요한 자들을 모두 준비시키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분명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복직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복직이 되면 왕에게 자신의 사정을 고해 줄 것을 부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복직이 되었을 때 그는 요셉의 청을 망각하게 됩니다. 시간은 흘러 다시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갑니다. 요셉에게는 참 절망적인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속히 감옥에서 나가기를 바랐으나 하나님의 시간표는 아직 그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 30이 되고 애굽에서 공직에 오를 수 있는 최소한의 제한 연령이 모두 차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지체 없이 바로의 꿈을 통해서 마침내 그를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오르도록 극적으로 그의 생애를 변화시키시는 장면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음을 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시고 그것을 주도하시며 연출해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역사의 시간표를 믿으십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고 염려하십니까.. 왜 인내하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결정하십니까..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왜 하나님의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의 방법과 생각으로 결국 후회하게 될 판단과 결정을 내리십니까.. 정말 나의 인생의 시간표를 하나님께서 쥐고 계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침내 역사하시는 그때를, 그리고 그 방법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결국 다 결정해 버립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내 인생이 불행해질까를 염려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은 전혀 없고 온통 인생의 모든 것을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내가 만날 사람, 내 학교, 내 직장, 내 사업, 내 집.. 모든 것이 그렇게 하나님의 시간표를 벗어나 내 시간표대로 내 마음이 안정되고 내 직성이 풀리도록 모든 일들을 결정해 버립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패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말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를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만을 신뢰했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했습니다. 채소만 먹어서 결코 살이 찔 수 없음에도 그들은 채식과 물만 먹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무모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뜻을 세워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길로 행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누구보다 외모와 체형이 출중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명철로 타에 추종을 불허할 뛰어난 지력과 능력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왕의 눈에 들게 역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쌓아 올린 그 모든 스팩으로 성공의 길을 가기 위함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세상의 모든 학문과 기술을 익혀서 어디서든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 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 그곳에서 그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곳에서 이제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야 하기에 신앙과 삶의 무대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까지 모든 준비가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렇게 인도하셨다면 이제 당신을 통해서 일하실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그 자리에서 요셉처럼 낮아짐도 억울한 일도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당신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준비되어졌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당신을 준비시키셨다면 이제 왕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왕에게 선택되는 기회를, 마침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길을 당신에게 허락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왕 앞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제 당신의 인생이 서 있어야 할 바로 그곳에, 그 자리에 오랜 기다림 끝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마침내 세우시게 되는 그 기회와 그 시간이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 시간과 그 무대 위로 이제 올라가게 되는 일들이 우리 각자의 인생 속에서도 찾아올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있어야 할 곳, 우리를 필요로 하는 그곳,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그 시간이 펼쳐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준비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 자들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바벨론에서도 성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이 다니엘서의 말씀을 그렇게 풀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믿음을 잘 지키면 이렇게 축복을 받는다고 설교하면 이것은 엉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의 눈에 이 네 사람이 들어오게 하신 것은 이제 계속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겠지만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지금 바벨론에서 받고 있었던 그 특별한 은총과 위상은 그들이 받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시기 위한 수단이며 방편이고 과정이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식과 지혜를 명철과 부를 간절히 구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그러면 우리를 통해서 무엇을 얻게 되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당신에게 지혜와 명철과 물질을 주셔야 합니까, 왜 건강과 가정의 평화와 화목을 주셔야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만 행복하고 우리만 형통하게 풍요롭게 살면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까..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맹목적인 축복과 번영과 평화만을 갈구하면서 어리석은 믿음의 길로 행하고 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