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8 17:44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그 영광을 모독하고 짓밟으며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이 세상에서 이토록 창궐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는 아직 이 세상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자기 백성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야 할 하나님의 자녀가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심판의 날은 유보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들에 의해서 멸시와 조롱을 받으셔야 할 존재가 결코 아니십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하나님께서 뜻하시기만 하면 모든 악인들을 굴복시키시며 하루아침에 온 천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시고 찬란히 그 이름이 빛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때 그러므로 성도는 단 한 가지의 이유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고 사업을 하는 것이고 직장을 다니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인생의 모든 희비애락의 순간들을 오직 그 목적과 이유 때문에 지나가는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속에 던져 넣은 느부갓네살처럼 공중의 권세 잡은 세상의 임금은 이 시대 역시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가혹한 핍박과 박해를 가하고 있고 그 일이 마침내 우리들에게도 언제든 닥칠 수 있음을 우리는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시대의 정신을 좇지 않고 인간을 떠받드는 모든 하나님을 대적하는 법과 제도에 순응하지 않을 때, 세상은 우리들에게도 이빨과 발톱을 드러낼 것이고 피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박해와 핍박을 가하게 될 때가 도래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지나가는 가운데 결코 모든 어려움들이 우리들을 피해 갈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모든 일들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결코 굴복하지 않고 능히 이기게 하시고 극복하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굳게 지키시는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붙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모든 진리를 우리가 견고하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심을 우리는 굳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무지와 어리석은 고집과 죄 때문이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 우리를 인도하심 때문이든지, 어느 순간 우리의 삶의 무대가 사망의 먹구름이 잔뜩 몰려온 것과 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할지라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먹구름 위에 여전히 태양이 빛나고 있듯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우리의 구원과 믿음을 굳건히 붙드심으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도록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이렇게 하나님께 붙들려 위대한 이적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높이는 이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해 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이 세 사람은 그들이 그 시대 그곳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감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불 가운데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그 마음에 각인된 채로 이 세 친구의 존재를 그들의 위치를 바벨론에서 더욱 높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믿는 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며 이러한 신의 가호를 받는 자들을 자신의 신하로 두고 자신의 제국을 더욱 번창하게 할 목적으로 그는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왕이며 정치가이기 때문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권력의 속성을 우리는 느부갓네살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세상의 권력은, 이 세상이라는 곳은 그렇게 그가 신자든 불신자들 그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의 존재가 기업에, 사회와 국가에 유익이 되는지 불이익이 되는지 만을 생각합니다. 유익이 되면 그를 높이고 그의 신앙도 인정해 주지만 불이익이 된다고 하면 언제나 그를 찍어 내리고 그가 가진 종교나 신앙에 대해서 박해의 철퇴를 가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자의 삶의 가치란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잘되고 못되고의 문제 보다, 성공과 실패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에 부합한, 하나님 앞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삶을 우리가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의 말씀의 복음의 가치가 점점 땅에 떨어지고 있는 이 악한 시대 속에서 우리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하십시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성도는 어떤 마음을 가진 자 일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황금을 숭배하는 이 배금사상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를 숭상하며 좁은 길을 걸어가는 자들, 황금의 가치를 비웃으며 믿음으로 감당해야 할 모든 그 대가를 이 세상에서 온몸으로 감당하며 오늘도 주께서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뒤를 쫓는 순례자들, 그들의 가치가 세상이 볼 때는 초라하고 멸시와 조롱의 대상처럼 여겨지더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지극히 존귀한 자임을 잊지 마십시오.
시편 16편 3절이 바로 이 가치를 위해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세상이 기뻐하고 환영하는 자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고 존귀하게 여기는 자가 되시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으로 그리고 구별된 삶으로 이에 답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붙드시고 도우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끝없으신 사랑이 오늘도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