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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리뷰 33 (다니엘 4장 28-37절)

2024.02.29 08:19

hc 조회 수:772

 

7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느부갓네살은 짐승 같은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느부갓네살의 정신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즉시 그의 정신을 온전케 해 주셨습니다. 그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는 것은 매우 상징성이 있는 행위입니다. 그는 언제나 땅을 바라보던 자였습니다. 권력에 취해 자신이 이룩한 제국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스스로 자신을 높여 영광을 얻는 것을 즐거워하며 살았던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의 시선이 언제나 땅을 향할 때,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할 때 그는 자신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겼습니다. 다른 모든 생명들을 지탱하는 거대한 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인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마침내 그가 깨닫고 인정하며 그 앞에서 철저하게 낮아진 존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며 땅을 소유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한없이 교만했던 그를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로, 하늘을 신뢰하고 하늘에 도우심만을 간절히 원할 수밖에 없는, 마침내 인간의 그 초라한 실존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을 그렇게 바꾸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가 인간일 뿐임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힘으로 결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언제쯤 인정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찾지 않고서는 어떤 고통이든 결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교만은 다른 어떤 존재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게 만드는 독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느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 나의 밑에 있어야 하고 그들을 모두 패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언제나 나에게 그 시선이 고정되어 있기에 결코 하나님을 바라볼 여유가 없습니다. 나의 존재를 제외한 모두를 우습게 여기는 것, 내 생각이 가장 옳고 모두가 틀렸다고 여기는 그 생각이 바로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교만을 깨뜨리고자 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를 왕으로 높이실 수도 있고 가장 강한 자를 지극히 낮출 수도 있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그에게 내린 징벌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만드셨습니다. 높아지기를 원하는 자신을, 그리고 그 무대가 되는 이 세상을 바라보던 눈이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그것, 그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내 뜻대로 다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분의 뜻대로 내 인생 가운데 행하심을 알게 되는 바로 그것이 바로 낮아짐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이 무능하고 무력한지를 처절하게 인식하게 되는 바로 그 시점, 그 시간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열리는 시작점이 되는 것입니다. 7년 동안 느부갓네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성경이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주석들에는 그가 이 기간 동안 회개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근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가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는 말하기를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고백할 뿐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참회했다는 기록도,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으로 인해 감격적인 고백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그는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이적과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그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존재로 숭상하며 그 권세와 나라의 영원함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낮추신 하나님께서 다시 자신의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되찾게 해 주셨음을 기뻐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어지는 35절을 보십시오. 제정신으로 돌아온 후 느부갓네살의 고백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자들을 통치하시고 그들의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 무가치할 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말하기를 하늘의 군사들과 땅의 모든 거민들을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섭리하고 주관하실 때, 그 누구도 하나님을 향해서 대항할 수 없음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력과 제국의 영광이 자기 자신의 것이라 여기던 어리석은 한 통치자를 이렇게 변화시키시고 그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이같이 분명하게 고백하고 나타내신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이 모든 고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진열장에 불과합니다. 느부갓네살 같은 가장 강력한 권력자조차도 이렇게 무너뜨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면 이 땅의 모든 교만한 인간들에 대해서, 그가 택자이든 그렇지 않든 그들을 낮추심으로 하나님의 존재하심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께 있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즉시 시행되지 않음으로 이 세상에 죄악이 이토록 창궐하고 아직도 참 믿음의 길로 행하지 않으며 세상과 신앙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니엘서의 느부갓네살은 바로 그런 영혼들을 향한 강력한 경고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포악한 이방의 군주도 이렇게 굴복시키신다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교만하고 도도한 모든 자들의 인생 속에서 기어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하실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어 36절에서 이제 자신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이성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다시 왕권과 명예를 회복하고 왕으로서의 이전 보다 더한 위엄과 영광을 되찾게 되었으며 또 모든 신하들과 관원들에게 다시 왕으로서 높임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신이 다시 회복된 것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그가 고백하는 말은 이 일을 겪기 이전에 과거에도 그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능력을 보게 되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제 그는 모든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며 그 권력을 주기도 하시고 다시 빼앗기도 하시며 모든 이 땅을 다스리는 권세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만큼은 분명하게 이를 시인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주신 깨달음이었음을 성경은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제국을 통치하는 인간은 결코 역사의 중심이 될 수 없고 모든 역사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진행되고 통치되며 세워지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는 이 중대한 역사관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회심이 주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으며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오늘도 모든 권력이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짐이 반복될 뿐이라는 사실을 다니엘서는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인간 권력자와 세상 정부가 아니라 오직 이 세상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어리석은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아가 자기의 꿈을 이루어 보고자 교만하고 어리석은 꿈을 꾸지만 반드시 그 모든 것을 깨뜨리시고 인간이 자기 인생의 주관자가 결코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주관자이시며 주권자가 되신다는 것을 결국 가슴을 치는 후회와 고통 속에서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며 기어이 세상의 어리석은 길로 행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이 지엄한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면 결국 짐승이 되어서야, 풀을 뜯는 소처럼 되고 돼지가 먹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열매를 먹게 되는 비참한 신세가 되어야 마침내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기복과 권력의 흥함과 쇠함이 모두 하나님께 있음을 성경은 당대 가장 강력한 패권 국가의 군주에게서 일어난 이 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신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