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08:32
음성이 들리자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에게 다가왔습니다. 천사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다니엘은 두려움을 느꼈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사의 신적인 권위 앞에서 완전히 압도당한 다니엘은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땅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신적인 존재 앞에 나아갈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입니다. 이러한 경외의 태도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대상은 결코 신적인 존재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그 음성을 들었다고 이 시대에 주장하는 자들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신적인 존재의 임재 앞에서 인간이 보일 수밖에 없는 극도로 자신을 낮추는 태도들이 그들에게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어떻게 죄인들의 눈으로 하나님을, 예수님을 보고 음성을 듣는 일들이 가능합니까.. 거룩하신 존재를 보잘것없는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뵈옵고 살아남을 자가 누가 있습니까.. 모두 무지하고 어리석은 개인적인 주장들일 따름입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그가 받은 모든 이상은 정한 때 그 끝 날에 대한 것임을 깨달아 알라고 말합니다.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적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7년간에 걸쳐 이스라엘을 유린한 기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등장하게 될 적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와 성도가 박해를 받다가 마침내 주께서 재림을 하시게 되는 궁극의 마지막 때에 관한 모든 이상, 계시를 뜻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깨달아 깊이 이해하고 이 사실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다니엘에게 그와 같은 사명이 주어졌다면 오늘 이 시대에 종말에 관한 이 모든 진리를 깊이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다가올 일들에 대해서 알게 해야 할 사명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서 말해 주어야 하고 흘러가는 시간의 그 마지막은 바로 종말을 향해,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행해서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경고해 주어야 할 사명이 이 진리를 알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진리를 우리의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우리들의 지인들에게 힘을 다해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그 마지막 종말의 비밀을 아는 자들에게 주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우리를 그들보다 먼저 불러 이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8~19절을 보겠습니다. 신적인 존재인 천사와 대면하는 일은 다니엘에게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이며 매우 두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얼굴을 땅에 댄 채로 깊이 잠이 들게 됩니다. 그냥 잠이 든 것이 아니라 혼절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브리엘은 혼절한 다니엘에게 다가와서 먼저 그를 어루만져 일으켜 세웠다고 했습니다. 감당키 힘든 묵시 앞에서 작고 초라한 인간 다니엘은 인간이 가진 무력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심히 두려웠고 이 감당할 수 없는 묵시로 인해서 깊은 고뇌가 그를 엄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비와 긍휼과 인자하심을 베풀어 그를 붙들어 일으켜 세우시며 그가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다니엘을 도우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때로는 감당키 힘들 만큼 우리를 낙심케 하고 좌절하게 하며 절망에 빠지게 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우리를 어루만지시며 붙들어 일으키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루만져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인생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길이지만 주의 붙드심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든 일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이란, ‘분노 뒤에 일어날 일’, 혹은 ‘진노의 마지막 때에 발생할 일’이란 의미로 여기서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예루살렘 성전 유린과 유다 백성들에 대한 박해와 핍박에 대해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심판하게 되시는 시점을 가리킵니다. 중요한 사실은 17절에서도 ‘정한 때’라는 표현이 나오고 19절에서도 ‘정한 때’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때를 누가 정했다는 것입니까.. 바로 이 온 우주의 중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모든 일들은 저절로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로 그때, 그 시간이 되어야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어느 날, 슬프고 고통스러운 날의 시작도, 그 모든 괴로운 날들이 마침내 모두 종식되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그 순간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그때를 자기 스스로, 자기의 노력만으로 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시간은 오직 하나님의 계획표 대로 이 세상에, 우리 모두에게 각 개인의 인생 속에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든 일들이 우리의 시대 속에서 우리의 인생 속에서 펼쳐질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때를 정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일어나야 만 하는 그 일이 어느 한순간에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에 우리는 모든 기도의 힘을 모아야 하며 그것을 하나님께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때와 죽게 되는 때가, 이 세상이 시작하게 된 때와 이 세상이 마침내 모두 사라지게 되는 때, 다시 교회와 성도가 박해를 받게 되는 때와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게 되시는 그때가 모두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서 정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