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0 08:11
당시 유대인들에게 시행되던 세례는 유대 공동체나 엣세네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자격을 취득하는 조건으로서의 세례였던 반면에 요한의 세례는 종말을 준비하기 위한 회개와 죄 사함의 세례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르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르러’라고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 ‘일어나다’, ‘발생하다’라는 의미로 약속되었던, 예언되었던 그 일이 마침내 발생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요한의 출현은 구약의 예언의 성취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필연적이었듯이 세례 요한의 탄생 역시도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섭리의 결과라는 것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대 공동체의 세례의 정신이 타락하고 부패하여 그 원래의 뜻을 추구하지 못할 만큼 훼손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예수 그리스도보다 먼저 유대에 등장시키심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와 이를 통한 세례를 회복시키시고 이제 장차 메시야께서 오셔서 베푸실 진정한 구원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를 보십시오. 진정한 중생과 회심의 증거 없이도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형식적으로 세례를 베풀며 서둘러 교회 안으로 소속을 시키고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구원의 감격도 없이, 흘러넘치는 눈물도 없이 형식적으로 세례에 참여하고 그 결과 십자가를 경험하지 못한 관념적인 종교인으로 전락해 버리는 일들이 다반사임을 볼 수 있습니다.
세례를 베푸는 요한, 참된 회개를 촉구하며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세례를 베풀며 이제 메시야를 통해 시작되는 새로운 언약 아래서의 참된 구원으로 영혼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요한의 활동 무대는 광야였습니다. 회당도 아니고 성전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성문 위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처음 언약을 체결하신 곳입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곳입니다. 출애굽의 모든 과정이 펼쳐졌던 곳이 광야이며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없었던 장소가 바로 광야, 그 원시적인 장소였습니다. 그는 그 광야를 무대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광야는 외로운 곳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없는 장소입니다. 광야는 다른 어떤 것도 의존하거나 의지할 수 없는 곳입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그 광야에서 연단을 받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습니다. 우리는 안전한 곳을 좋아하고 그곳에 머물기를 좋아하지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보다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요한은 광야를 사랑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자기의 종을 준비시키십니다. 광야를 사랑하는 자, 그곳에서 하나님과 독대할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하고자 하시는 자들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광야로 내 모십니다. 광야는 사명이 잉태되는 곳이고 연약하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무쇠처럼 단련되는 곳입니다. 광야를 통과한 자만이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하고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갈 수 있는 용사가 되는 것임을 우리는 요한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반드시 광야로 이끄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 황량한 광야를 경험하게 되거든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는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에 이르도록 이끄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세례’는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그 행위 자체가 죄 사함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마음을 결단하도록 이끄는 것으로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회복되고 궁극적으로 죄 사함과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그것을 예비하는 역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는 것은 참된 회개를 통해서 임박한 메시야의 도래를 준비하도록 사람들에게 선포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알리고 예언하는 사명을 감당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심을 말씀하면서 요한이 강조한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회개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메시야를 고대하는 자들에게 요한은 세례를 베풀어준 것입니다. 그들에게 믿음을 준비시킨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도, 복을 받을 것에 기대도,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란 소망도 아닙니다. 주 예수를 구주로 믿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신이 씻을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씻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자인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에게 임하실 때, 그가 성령의 세례를 받음으로 타락한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생애적으로 일어나게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한 두려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깊이 의식하게 됨으로 자신이 영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선명하게 깨닫게 되고 그런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해서 자신을 버리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모든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일어나야만 합니다. 나를 위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위대하신 사건으로 인해서 그 십자가 앞에서 완전히 자신이 무너져 버리게 되는 생애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회심으로 이끄실 때 일어나게 되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회심을 통해서 자신의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됩니다. 중생한 모든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은 이 회심의 증거들을 통해서 이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거듭나게 하시고 회심케 하신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 그의 영혼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서의 믿음이 마침내 심어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만 다니면 구원을 받는 것도 세례를 받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닌,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거듭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회심을 경험하고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고 이것을 확신하게 될 때 그것이 그가 받은 구원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