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31 08:32
주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가시지 않고 주님은 제자들의 원하는 바와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근처에 있는 다른 마을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 지방에는 200개가 넘는 동네와 마을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시몬의 집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는 일을 행하기를 거부하시고 제자들에게 다른 마을로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 주님은 거기서도 전도를, 복음을 선포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유념해서 보십시오. 주께서 기도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복음을 전파하시는 일이었음이 주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을 설교를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을 내쫓고 병자들을 고치는 일보다 더 본질적인 일은 복음을 설교하시는 일이셨습니다. 예수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육체적인 문제와 필요를 해결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이루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구름 떼처럼 몰려온 자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경계하신 일이었습니다.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예수를 그릇된 목적으로 추종했던 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지금 이 시대의 신자들이나 모두 그리스도를 심각하게 오해하고 따르게 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주께서 원하시는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큰 고난과 위기와 어려움이 있어 우리가 교회를 찾아 나올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말미암은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서 바로 이러한 고난이 신앙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되어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가 되심을 발견하고 깨닫고 믿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큰 병이 생겨서 교회를 나오게 되었고 병 낫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경험해야 합니다. 나에게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지를 생애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근원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며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를 받았다면 이제 남은 모든 인생을 주께 맡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에 끊임없이 자신을 복음에 포개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하나님의 아들께서 아버지께 온전히 복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와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나를 통해서 온전히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이 땅에서 감당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더욱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부단히 듣고 배우고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을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이 오신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이 오신 것은 주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그 모든 복음의 진리의 의미를 생각나게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듣고 깨닫고 정교하게 배우는 것이 신앙입니다. 믿음은 정확한 복음을, 참된 진리를 들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직 진리가 선포되는 설교를 듣고 또 듣고 또 듣는 것입니다.
신앙에 다른 것이 목표가 되거나 다른 것이 중요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앞에서 자기 자신이, 그 오만한 자아가 산산조각이 나고 그 진리의 깨달음에서 지극히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신자가 되는 것, 그것이 신앙 안에서 제일 중요한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이 이에서 벗어날 때 기형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리에서 이탈해서 방황하고 배회하며 온갖 그릇된 신앙의 형태로 변질되고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모든 곳을 두루 다니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갈릴리 전역을 여행하시면서 곳곳에 있는 회당으로 가져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이를 위해서 귀신을 쫓으시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오늘날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진 이 시대에 더 이상 귀신을 쫓거나 병을 고치는 일은 복음이 존재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병을 낫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고 귀신을 쫓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닙니다. 사업이 잘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자녀들이 성공을 하고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고 고난이나 어려움이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의 올바른 동기도 목적도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모두 기록되어 계시가 종결되었고 이제 구원의 길, 영생의 길이 모두 이 성경의 진리 안에 담겨 있으므로 이제 우리의 믿음의 초점은 성경을 통해 진리를 듣고 보고 깨닫고 배우는 것에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알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인지를 배움으로, 나 자신을 부인하고 해체시키는 길이 무엇인지를 은혜를 통해서 발견하고 깊이 찔림을 받음으로 나는 죽고 오직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됨을 우리는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교회를 다니고 있어도 그는 여전히 불신자일 뿐입니다. 신앙은 당신의 열등감을 치유하기 위한 목적도, 당신의 이름을 알리고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상처 입은 자존감이 교회를 통해서, 종교생활을 통해서 인정을 받기 위한 이유 때문도 아닙니다. 십자가 아래서 죄인인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주가 부르실 때까지 우리가 받은 그 사랑과 은혜를 진리 안에서 매일 발견하고 깊이 감격하고 감사함으로 오직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디 오늘도 당신이 진리를 깨닫는 일에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사랑과 그 은혜를 더 깊이 발견하게 되는 일에만 열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방향이 그것을 지향하지 않을 때 수없이 넘어지고 쓰러지고 상처받는 지루하고 무의미한 삶의 수레바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