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9 08:27
당시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강조했습니다. 금식은 그들의 경건을 표시하는 공로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의로 여기며 대단히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 보면 이 금식의 규정은 사실 속죄일에만 금식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여기서 더해 부림절이나 예루살렘 함락일 같은 날, 매년 네 번의 금식을 지키는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더 엄격한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그들의 의를 드러내고 경건을 포장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모두 형식적이었으며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입니다. 요한의 제자들도 역시 금식을 했는데 그들의 금식은 참 경건과 금욕과 절제 생활을 위한 금식으로 바리새인들의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형식적인 무의미한 금식과는 구별되었습니다. 마가복음과 달리 마태복음 9장 14절에서는 이 질문을 예수께 던진 자들이 요한의 제자들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도 금식을 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주님께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도발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고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에 대해서 예수의 제자들은 이것을 따르지 않고 있음에 대해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문을 갖게 되는 문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왜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요한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예수의 제자들이 된 자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그들을 제외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 메시야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이 회개를 선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장면을 보고 자신들의 스승이 참으로 위대한 선지자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승을 통해서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들 앞에 메시야가 그 정체를 드러내셨을 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반신반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고 율법을 올바로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몽매한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어리석고 사악한 자들이었다면 요한의 제자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을지라도 그들 역시 그리스도에 대해서 깊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그리스도께 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된 진리의 근처에 머물 수는 있어도, 개혁 신앙이 무엇인지 지식으로는 알 수 있어도 여러분이 예수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참 믿음도 참 구원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셨지만 요한의 제자는 그저 요한을 맹목적으로 좇는 자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제자들은 이것이 그들의 한계였을 것입니다.
정작 메시야를 그들의 눈앞에 두고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기에 그들은 많은 의문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그들의 무지는 그리스도께 금식의 문제로 이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칼빈을 신앙의 위대한 영적인 스승으로 여기며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매우 올바른 정통이라고 여기면서도 정작 예수를 구주로 믿고 있지 않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함으로 인해 여전히 우리의 모습 속에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그릇된 신앙의 모순된 모습들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올바로 깨닫고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부단히 우리 안에 있는 불신앙적이고 참 믿음이 아닌 요소들에 대해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그릇되게 알고 있거나 아직 깨닫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을 철저하게 시인하고 규명해 나아가는 일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믿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