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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모시고 제자들은 밀밭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밀밭 사이에서 길을 열면서 이삭을 잘라먹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밀밭을 지나가면서 이렇게 이삭을 서리하는 것은 율법에 의하면 죄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23 25절을 보면,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말찌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굶주린 이웃이 타인의 곡식밭에 들어가서 순전히 배가 고픈 이유 때문에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곡식 낱알을 따먹는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용과 긍휼의 마음으로 이를 허락할 것을 명하고 있는 규례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한 끼의 굶주림을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서리를 허용한 것이지 결코 낫을 들어서 곡식을 베는 행위는 금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가 고파 낱알을 따 먹는 정도는 허락할 수 있지만 낫을 들어 볏단을 배는 것은 이웃의 소유를 도둑질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반드시 그 속에 공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따뜻한 사랑과 긍휼까지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로 보건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밭을 지나가면서 손으로 낱알을 따 먹은 것은 분명 죄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예수의 제자들이 이삭을 자르고 손으로 비비어 먹은 행위가 유대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분명하게 이것은 안식일을 범한 죄가 되는 행위였다는 점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 보기에 이 같은 행위는 분명 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을 잘랐으니 이는 안식일에 추수를 한 것이 됨으로 이 행위는 죄가 되는 것이고 또한 자른 이삭을 손으로 비볐으니 이는 안식일에 타작을 한 것이 됨으로 역시 그들이 세운 규례를 어긴 죄악을 범한 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예수의 제자들이 보여준 행위는 율법 준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배가 고파 분명 합법적인 서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행위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금기이며 죄악이었습니다. 안식일 논쟁이 벌어진 궁극의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왜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느냐..’ ‘왜 예수의 제자는 금식하지 않느냐..’ ‘왜 예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곡식을 따서 먹는 것이냐..’

 

유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밟으며 계속해서 예수님의 모든 말과 행위에 대해서 이렇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과 법과 규례의 가치들을 예수와 그 제자들은 철저하게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철저하게 지키는 가치들을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당연히 그렇게 여기고 그것을 지켜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율법과 규례들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곧 이스라엘 안에서 최고의 종교적 권력을 가진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에 콧대 높은 그들의 자존심이 크게 상처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언제나 더 의식하는 인본주의자들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의 명예나 자존심이 상처를 입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하나님만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처음부터 그들 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을 뿐입니다. 주께서 왜 그들을 미워하셨는지를 우리는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인간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들이 아님을 성경은 우리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여기고 모든 의무와 책임을 다해왔고 열심히 교회를 위해 봉사를 했어도 그 모든 동기가 진정으로 주를 위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교회 안에서 그릇된 종교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내면의 상처를 입게 된다면 이로써 그가 가진 신앙의 진위는 결국 모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우리 자신을 위한 모든 일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이 될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파격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행보는 유대주의자들에게 골칫거리였습니다. 자신들이 세운 전통적 가치를 멸시하며 새로운 법과 질서를 말하며 대중들을 선동하며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진리를 설파하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결코 이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의 기득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그들은 간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들과 자기들이 만든 규례와 규정들이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불편한 심기와 분노가 이렇게 표출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 같은 행동을 문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 앞에 서 있는 분이 구약의 성경이 그토록 예언해 왔던 메시야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었는데 단지 자신들이 만든 규정들을 어겼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도 문제 삼지 않으시는 것을 그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상대로 트집을 잡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자신들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그 규례들에 대한 멸시를 그들은 곧 자신들에 대한 멸시와 능멸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심리가 그러합니다. 내가 한 말을 무시할 때,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옳지 않다고 말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때 우리는 그것을 잠잠히 기다리거나 그럴 수도 있다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고 멸시한 것으로 간주해서 분노하게 됩니다. 나의 의견이 무시되면 곧 나 자신이 무시되었다고 느끼게 되고 그때부터 마음에 분노를 품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지극히 인간적인 죄성이 우리를 진리 앞에 더 정직하게 세우는 일을 방해하는 것을 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경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향해 자기들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고 오직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였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행위와 그들의 그 악한 마음을 모두 꿰뚫어 보고 계시는 분이시며 그들의 이 같은 모습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입만 열면 율법을 말하고 규례와 규정을 따졌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드러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일에는 무지하기 이를 대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시당한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아들을 그들이 무시하고 멸시하고 있음에 대해서는 그 죄악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평생 연구하고 율법에 그렇게 정통하다고 자타가 공인을 해도 그들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뜻과 그 언약의 의미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율법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그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듣게 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 사람의 공로나 기준. 맹목적인 지식주의 같은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자신이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만 얻게 됨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이 같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 구원의 길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그 길로 행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무지함에서 벗어나십시오. 하나님을 깊이 알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내가 중심이 되어 있는 신앙에서 돌이키십시오. 유대주의자들이 이 같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신앙의 모습을 보고도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불신앙의 모습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당한 멸망을 우리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신앙은 결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진리를 통해서 그것을 찾고 발견하는 일보다는 오늘도 신앙 안에서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행위 속에서 의를 찾고 자신의 소원과 뜻을 이루고 세상에서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그릇된 신앙의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리에 우리는 반드시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지 못할 때, 그리스도를 만난 그 생애의 감격과 기쁨과 감사가 신앙의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면 유대주의자들처럼 단지 종교심을 등에 업은 인간 자신의 만족의 욕구가 언제나 신앙의 동기가 되고 그 마음과 영혼을 지배하게 되는 그릇된 신앙의 굴레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게 됩니다.

 

믿음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의 이 같은 어리석고 추악한 모습 속에서 보게 되지만 우리 안에서는 결코 이러한 모습이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분별하여 돌이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구원과는 무관한 믿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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