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6 08:54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71문은 성찬이라는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는 사람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에 대해서 ‘성찬이라는 성례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전에 반드시 준비를 해야 한다. 제일 먼저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를 살펴야 하고..’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찬에 나아가는 자가 가장 먼저 살필 것은 성찬을 받고자 하는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인지를 점검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대요리문답의 이러한 설명은 성찬을 받는 자들을 언제나 겸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이렇게 고린도 교회를 향해 말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린도교회의 성도 중에는 바울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은 자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있었고 사도 바울의 도덕성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헌금의 일부를 빼돌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즉시 자신은 고린도 교회를 통해서 아무것도 얻기를 원치 않는다고 해명하면서 자신을 결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을 속인 적이 없음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서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거짓된 비방자들이 퍼뜨린 사도 바울에 대한 소문 때문에 온통 교회가 잡음이 일고 있었고 영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자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언제나 이렇게 사탄은 영적인 권위를 흔들어 신뢰를 무너뜨림으로 공동체를 와해시키기 위해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영적으로 한심한 지경에 있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권징할 것을 경고하면서 자신의 사도권을 스스로 방어하는 한편 그들이 사도권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울은 역공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나의 사도권을 의심하며 문제 삼기보다는 그대들의 구원을 확증하는 일에 대해서 더욱 치중할 것을 당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세움 받은 자신의 사도권을 문제 삼기보다는 그대들 자신들의 구원을 더욱 시험하고 확증하는 일이 중요함을 설명하면서 그대들의 구원이 사실이면 나의 사도권 역시 확고한 것임을 증명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영혼의 구원의 문제, 죽음과 내세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사도는 어리석게도 거짓 사도들에게 속아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며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해서 그들이 여전히 몰입하고 집중해야 할 분명한 주제가 무엇인지 관해서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어리석은 죄악된 일들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에 더욱 착념하며 자신들의 신앙의 뿌리를 더욱 견고하게 깊이 내리는 일에 착념할 것을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영혼이 구원의 터 위에 견고하게 세워져 있는지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일은 성경이 우리에게 명하고 있는바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6~2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사도는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사명에 대해서 달리기와 그리고 격투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출발선에 선 달리기 선수는 오직 결승점을 바라보고 전력으로 질주를 합니다. 권투를 하는 선수가 펀치를 날리기 위해 집중하는 것은 상대의 얼굴입니다. 오직 그것을 목표해서 훈련하고 게임에 임하면 그것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게 됩니다.
사도는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힘쓰는 한편 부단히 자기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기 위해, 즉 자신의 경건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사도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정작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당할지 모를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 같은 하나님의 종도 이렇게 자기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깨워 놓는 일에 대해서 매우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한 가지 우리 안에 더욱 밝아져야 할 불빛은 바로 구원과 영생에 대한 소망과 참된 확신입니다. 그것을 신자는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이 사라질 때. 삶과 신앙이 무료해지기 시작하고 권태로우며 실증과 원망이 우리의 영혼 가운데서 일어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대한, 십자가의 대속하심에 대한 초점이 사라지면 영혼이 무디어지게 되고 신앙은 매너리즘에 깊이 묻히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감격도 없고 감동도 사라지게 됩니다.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진 신앙은 영적인 것에 이제는 뜨거운 관심이 멀어지고 세속적이고 말초적이고 내 육체의 소욕이 나를 이끄는 것들에 대해서 마음이 따라가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신자의 영혼은 마치 잡초가 무성한 아무도 손대지 않는 버려진 정원처럼 그렇게 정돈되지 않은 채 온갖 세상의 것들이 지배하고 득세하고 있는 영혼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지배하고 있는 영적인 마음과 영혼이 아니라 우리의 육이 지배하고 있는 메마르고 척박한 영혼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성도들의 영혼이 이러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치 바짝 마른 풀숲에 지나가는 등산객이 던진 작은 담뱃불이 결국 온 산을 다 태워 버리게 되듯이, 영적으로 곤고하고 척박한 하나님과 멀어진 마음들이 공동체를 지배하게 되고 그것에 어떤 분열과 갈등의 발화점이 생겨나게 되면 공동체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리는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본질에서 멀어진 성도들이 영적인 권태와 무기력과 타성에 무너져 있을 때 거짓 교사들이 틈을 타게 되자 사도와 영적으로 결별하고 균열일 발생하게 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다시 본질을 붙들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대들의 구원의 문제에 다시 착념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십자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굳게 붙들라고 말합니다. 그대들이 지금 자신을 대적하여 일어나게 된 이 모든 일들이 바로 그대들의 가슴속에서 복음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사도는 진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는 다른 말로 그들을 교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것으로 영혼과 마음을 소란하게 하지 말고 모두 자신들의 삶을 면모를 주의 깊이 살피면서 내 안에 구원의 증거가 있는지를 깊이 살피라고 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