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7 06:12
모든 선민들, 유대인들은 누구도 예수를 그들의 구주로 인정하지 않았고 배척하였지만 이 이방의 가나안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며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것은 그녀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괴로움과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딸을 위해 흘린 그 많은 눈물과 그 마음에 스며든 오랜 시간 동안의 괴로움과 슬픔과 고통이 마침내 그녀의 마음을 물처럼 녹였고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게 했으며 주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고백을 드릴 수 있게 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모습이 구원으로 부르시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행하시는 놀라운 은혜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의 여인은 자신이 주님의 사랑을 받기에 미천한 존재에 불과함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고백이 있었는지를 돌아 보십시오. 우리는 주께 이러한 고백을 드린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참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유대주의 종교 지도자들과 같은 오만과 위선과 가식적인 모습과 자기들이 만든 유전과 전통들을 엄수하며 그것으로 자기들의 의를 드러내고 자랑하려는 악한 모습과는 결코 무관한 것입니다. 주께서는 의도적으로 이 가나안 여인이 보여주는 반응과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의 어리석은 위선적인 종교심을 극명하게 대조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보기에는 무엇이 진정으로 구원 받은 믿음처럼 보이냐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여러분에게 힘주어 말씀드립니다. 구원은 반드시 그 심령이 지극히 낮아진 자에게 임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은 그 여인의 겸손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녀의 심령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얼마나 절박하고 간절하며 진실된 것인지를 보고자 하셨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녀에게 이 같은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주님은 귀신들린 딸의 그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그녀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녀의 딸을 낫게 하심이 궁극의 목적이 아니라 그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고 그 가난한 심령에 마침내 임하게 되는 구원의 위대함을 보이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연출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부인함으로 나타납니다. 자기의 모든 자존심을 완전히 다 내려놓은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마음이 주 앞에 온전히 낮아졌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낮추시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겸비케 될 수 없는, 우리는 오만한 자들이고 우리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들임을 아시기에 결국 우리의 아픔과 고난을 통해서 지극히 우리를 겸비케 하시는 일들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겠습니까.. 바로 겸손함입니다. 주 앞에서 한없이 낮아짐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주님 앞에서 낮아짐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는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겸비함 때문이었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 그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자에게 구원은 임합니다.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릇된 선민의식으로 인해 겸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이방인들인 우리는 선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힘입어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그들에게는 겸손함이 있습니다. 물론 이방인이라고 모두 저절로 겸손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구원 얻는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고 깨닫고 경험한 자라면 결코 우리의 신앙 속에는 바리새인과 같은 그러한 교만함과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어리석음은 결코 찾아볼 수 없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기억하십시오. 우리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이 악한 속성과 성품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일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겸손하지 않으면, 겸손케 되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민의식의 오만함과 자기의 의로 가득 찬 유대주의자들에게 이스라엘 밖에도 구원이 있음을 이같이 보여 주셨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의 선입견을 철저하게 깨뜨린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같이 겸비한 마음, 주의 긍휼과 자비만을 바라보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것임을 이 사건을 통해서 명백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이 가나안 여인에게 그녀가 이 말을 하였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녀의 겸손하고 가난하기 그지없는 그 마음이 절절히 담긴 고백에 주께서는 매우 흡족해하시면서 그녀의 믿음이 결국 그녀의 딸을 낫게 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은 이 상황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더 자세하게 묘사하기를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마침내 그토록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던 귀신 들린 어린 딸에게서 마귀는 쫓겨 나가게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그녀의 딸을 만나 보지도 않으시고 그 시로 그녀의 딸에게 들어있던 마귀를 축출하셨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능력을 행하시는 위대하신 메시야의 권능이 또다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오늘도 모든 고통 가운데 있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팔이 짧아서 여러분을 구원하시지 않음이,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지 않음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단지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우리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진행되고 있기에 아직은 우리가 여전히 그 아픔 속에 있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 부디 낙심치 말고 절망치 말고 그 모든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믿음으로 인내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마침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어린 딸의 영혼을 장악하고 있던 사탄 마귀가 쫓겨 떠나가고 그녀의 딸은 완전히 회복이 되었습니다. 구원은 행위의 의를 드러냄을 통해서가 결코 아니라 이 여인같이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그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 되신 것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을 통해서 주어짐을 주님은 이 여인을 통해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교훈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그리스도를 향한 이 신앙의 고백은 귀신 들린 딸을 즉시로 낫게 했습니다. 자녀를 위해 오래도록 기도해 오신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부모님들의 믿음을 보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러분의 믿음이 온전한 지를 보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낮아졌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십니다. 자녀의 영혼은 주께 맡기시고 나에게 그 믿음이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서의 그 겸비함이 있는지를 돌아보십시오. 여전히 자존심과 교만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 차 있지 않은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 얻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분명한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구원은 무지하고 교만한 영혼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아직도 내가 살아있고 내가 높아지기를 원하며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구원이 임하는 밭이 아닙니다. 유대인은 자기를 높입니다. 선민들인 자신들이 구원받음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습니다. 자신은 개라고 여겼습니다. 부스러기라도 감사하다고 고백했습니다. 누구에게 구원이 임했습니까.. 사람을 언제나 높이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마땅히 이 가나안 여인처럼 주 앞에 겸손히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오늘날 참된 교회는, 진실된 설교 강단은 사람을 높이고 위로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십자가 아래서 철저하게 낮추고 그의 자존심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가 참된 신자인지의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누구나가 교회에 올 수는 있어도 영혼의 겸비함이 없다면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그 마음을 깊이 상하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게 함으로 그가 이 복음 앞에 자신의 겸손함을 분명하게 드러내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영혼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라면 이 가나안 여인과 같은 반응을 반드시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음성을 듣는 자가 내 양이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말씀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나를 수치스럽게 하고 부끄럽게 만들며 모멸감과 상처를 주는 말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겸비함을 갖춘 하나님의 자녀임을 시험하시고 또 우리를 기어이 그런 가난하고 절박한 심령을 가진 자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셨는데 오늘의 교회들은, 이 시대의 설교자들은 결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면 교인들이 오지 않고, 있던 교인들마저 다 떨어져 나갈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구원받은 자들이, 교회 안에 참된 회심을 경험한 자들이 많지 않은 것이고 모두 어린아이같이 자기들 만을 사랑해 주고 위로해 주기를 바라는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들로 넘쳐나는 것입니다. 결국 견딜 수 없어 자기를 높여 주는 곳으로 떠나는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일 수 있는지, 내 자존심이 상하고 나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있더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수 있는지, 주님만을 높일 수 있는지, 교회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영혼들을 시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구원 얻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주의 은혜로 통과한 자들과 함께 이 마지막 시대에서도 하나님의 영광 만을 위해 그 빛나는 내세를 바라보며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진정으로 주께서 바라시는 믿음인지를 부디 이 복음서의 말씀들을 통해서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으로 인도하는 영혼들이라면 그들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들을 이루시고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시는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들여다보면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이유와 목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계획하고 계시고 그것을 이루실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의 뜻이 오늘도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일지라도 그 인생이 지나가는 동안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고 이루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우리도 더욱 힘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겸비한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인생의 모든 날들을 잘 감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