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0 07:38
많은 병자들이 주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주께로 나아온 자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소경과 귀머거리, 앉은뱅이 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자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타락한 인간들의 절망적인 영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요, 진리를 듣고도 깨달을 수 없는 귀머거리요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앉은뱅이와 같은 처지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로 나아온 자들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찾아가 만나 주신 모든 자들은 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병자들을 고치신 그 모든 긍휼의 사역들은 이렇듯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타락하고 부패했으며 전적으로 무능한 인간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의 사명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먹고 말이 어눌한 자를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안수해 주실 것을 앙모하고 있었습니다. 귀먹고 말이 어눌한 자, 스스로는 도저히 이러한 장애를 치료할 수 없는 이 환자를 그를 아는 자들이 예수 앞으로 데려왔듯이 영원한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 자신의 영혼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있는지 알 지 못하는 자들을 우리는 오늘도 그들을 데리고 예수께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들이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될 수 있고 여러분의 지인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 사회에서는 육체의 장애를 하나님의 저주로 간주했습니다. 육신의 장애보다 더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사람들의 이 같은 차가운 시선과 편견이었습니다. 육신의 장애가 있는 자는 모두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 버리게 되는 유대 사회의 이러한 냉혹한 차별들이 더 큰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이 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육체의 장애를 가진 자들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부정한 자로 여겨 그들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모든 병자들을 항상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결코 그들을 부정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은 모든 병자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차가운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이와 같은 자상하고 자애로우신 모습으로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병자들을 다하셨습니다. 죄 가운데 있어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는 모든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을,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따로 데려가셨습니다. 이제 주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일을 은밀하게 하시려는 목적도 있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아닌, 많은 환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오직 그에게만 집중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 계시며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자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실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무지하고 그릇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일대 일의 관계 속에서 교통하시고 교제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섭리해 나아가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작은 신음 소리까지도 알고 계시고 우리의 눈물방울을 모두 세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귀머거리와 말이 어눌한 자에게 보이신 주님의 행위를 주목해 보십시오. 주께서는 양쪽 귀에 손을 대셨습니다. 이것은 너의 문제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는 뜻이 자상하신 행동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것은 이제 너의 듣지 못했던 바로 이 오랜 고통을 내가 알고 있고 이제 이것을 내가 고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이 귀머거리에게 구체적인 주님의 치료의 의사를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장애를 가진 자의 눈 높이에서 그를 안심시키시고 그에게 일어날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기대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한껏 고무시키기 위한 주님의 배려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할지를 이러한 방식으로 알려 주시면서 그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최대로 끌어올리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부족할 때, 여전히 의심하고 두려워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불어넣으시는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과 그 믿음이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더 다가오도록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시는 일들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믿음이 연약할 때 주님은 놀라운 일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도우시고 나를 지키시며 나를 사랑하심을 깨닫게 하시는 일들을 행하십니다. 아직 믿음이 그리 깊지 않음에도 마음에 간절히 바라던 바를 이루어 주시기도 하고 큰 위기를 벗어나도록 역사하기도 하십니다. 생각지 않은 도움을 얻게도 하시고 이런저런 일을 통해서 ‘아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나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나의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시는구나’라고 여겨지도록 만드시는 일들을 행하십니다. 주님께서도 지금 이 듣지 못하고 말이 어눌한 자에게 그 같은 의도로 이러한 자비와 긍휼을 나타내고 계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