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1 08:01
다음은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가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있음을 주님께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심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냥 말씀만으로도 얼마든지 병을 낫게 하실 수 있었지만 주님께서 이 귀먹고 말이 어눌한 자에게 이렇게 하시는 것은 그의 믿음을 격려하시고 그로 하여금 이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그가 간절히 기대하며 충분히 그 사실을 인지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8장에서도 주님께서는 동일하게 소경을 고치실 때도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도 주님은 동일한 방법으로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소경에 눈에 바른 후에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침을 뱉어 치유를 하는 행위는 유대인들의 일종의 민간요법과 같은 의료 행위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도 있지만 이러한 치료의 행위는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는 다분히 미신적이고 비위생적으로 보이며 분명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입니다.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이 같은 행위를 주님께서 여러 차례 행하신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해할 수 없는 이 같은 치유의 행위에 대해서 조차도 절박하고 절실한 믿음을 가진 자라면,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가진 자라면 주께서 행하시는 이 같은 행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소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이 모든 행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믿고 있는지를 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과 이성과 우리가 생각하고 추론하는 것과 주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은 매우 동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해하기 힘들고 우리의 이성적 사고나 합리적인 판단으로 수용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신앙을 나의 생각 속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마십시오. 오직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깨닫게 하실 때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판단이 우리가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전적인 자기 부인이 필요합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묵묵히 기다리고 인내하는 일이 반드시 요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바는 이러한 일들을 내가 겪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때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의아하게 여기거나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우리의 이러한 이성적이고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행하실 때 그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이 아니면 결코 바라볼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께서 어떤 상황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하시든 간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관과 뜻과 섭리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여기는 우리의 확고한 믿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과 뜻대로 행하십니다. 그것이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방식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모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절대적인 믿음이었습니다.
가정에 위기가 찾아왔는데 더 성경을 가까이하고 기도를 하라고만 합니다. 취업을 하고 싶어 하는데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만 말씀하십니다. 몸이 아픈데 주님의 십자가를 더 묵상하라고 말합니다. 전혀 지금 나의 형편이나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를 고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원론적인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하나님께서는 먼저 확인하고자 하십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대안처럼 보이고 뻔한 얘기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진정한 능력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신의 장애 가운데 고통 당하고 있는 그의 영혼의 상태와 육신의 상태를 깊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야께서는 그렇게 죄인들에게 임한 영벌의 저주에 대해서, 그 영원한 절망의 상태에 대해서 깊이 탄식하시며 슬퍼하신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할 영혼들을 바라보시며 주님은 오늘도 탄식하시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을 우러러보셨습니다. 모든 위대한 기적의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임한다는 것을 주께서는 몸소 표현하시며 성부 하나님을 높이셨습니다.
모든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임함을 주께서 언제나 병자들을 고치시며 이적과 기사를 행하실 때마다 그렇게 드러내 보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 된 우리 또한 무엇을 목표하여 살아가야 할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모든 영혼은 영혼의 장애를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모두 각자에게 주어지는 결핍과 상처, 아픔들이 있습니다.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에 있어 우리는 모두 장애를 가진 자들입니다. 상처와 결핍으로 가득 찬 우리는 깨어진 유리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것이 죄와 타락이 불러온 참혹한 결과이며 우리의 상태입니다. 사람들이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모습들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주께서는 오늘도 죄 아래 태어나 죄로 인해 얼룩져 버린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 지극한 안타까움과 긍휼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의 아픔에 대해서 탄식하시는 분이십니다. 귀먹고 말이 어눌한 그의 모든 고통에 대해서 깊이 주님께서 마음 아파하셨듯이 말입니다. 긍휼은 그 자녀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깊은 탄식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전적인 타락과 무능과 부패에 대해서 깊이 탄식하심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긍휼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무너지고 쓰러지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하기에 언제나 우리를 오른손으로 굳게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