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2 21:26
그토록 예수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던 산헤드린의 유대교 지도자들까지도 예수님을 극렬히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유월절을 맞아 자신들이 행해야 할 거룩한 직무도 내팽개치고 지금 이곳에서 예수를 죽이는 일을 즐기고 있었고 더욱 극렬히 그리스도를 조롱하도록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의 마귀의 졸개들은 그렇게 그 자리에서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다고 예수님을 경멸하고 비웃고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자들도 있지만 절대다수는 지금도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타고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예수를 저주하며 멸시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악마적인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조롱하는 절대 악은 돌이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진리를 멸시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자들, 그들은 유기된 자들입니다. 사탄의 하수인과 같은 자들은 끝까지 극악함을 보이며 영원한 저주의 길로 행하게 될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권력가들은 마음껏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자신들이 모든 뜻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그들은 쾌재를 부르며 마음껏 하나님의 아들을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 의해서 죽어 가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는 것임을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그렇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흥하고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짐으로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세상에서 봅니다.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악인들을 통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 뿐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악인이 흥한 것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엄하신 심판과 멸망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역사는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공의에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 뿐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어떤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지를 아는 일에 그리스도인들은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주변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로마의 포악한 군병들, 그리고 유대인들의 무리들, 대세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심지어 함께 처형되고 있는 양편의 강도들까지도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위로하거나 변호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어린양 예수께서는 그렇게 십자가 위에서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계셨고 성부 하나님께로부터도 외면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홀로 감당하셔야 했던 대속의 무게였습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이스라엘의 왕이여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하여금 네가 메시야 인 것을 믿게 하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다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네 능력으로 만약에 너를 구원한다면 우리가 믿을 것이라고 조롱과 회유가 섞인 의미로 그 고통 가운데 있는 주님을 향해서 잔인하게 계속 모욕과 조롱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 밖에서 살아가던 우리들의 악함이었습니다.
모든 시대 속에서 교회와 신자를 박해하던 자들이 하나같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닌다면서 너는 왜 그렇게 어렵게 살고 왜 너는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냐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립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조롱과 시험과 동일한 고난을 모든 시대의 경건한 그리스도인들 겪어야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스스로를 구원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믿겠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사탄 마귀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회유합니다. ‘믿지 않는다고 해라, 이제 그만 믿음을 포기해라 네 마음대로 네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라 그게 현명한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적당히 믿어라 그렇게 믿지 않아도 다 천국에 들어간다.’ 오늘도 우리를 조롱하면서도 동시에 유혹하고 회유합니다.
그리스도가 받으신 조롱과 비난의 내용을 보십시오. 네 스스로를 구원하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 불신자들은 자기 자신이 우상이기에 언제나 살 길을 도모합니다. 사는 길을 찾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삶의 가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살아남는 것에 있지 않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는 것에 있다는 것을 저들은 알지 못합니다. 기독교의 정신은 영광스러운 죽음으로서 영원한 삶을 사는 것임을 유기된 자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위대한 사랑이 없음을,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언제나 내가 살고 봐야 하고, 나의 행복 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기중심의 가치관을 가진 자들은 절대로 기독교의 진리가 말하는 삶의 가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둘 중에 반드시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결국 세상을 포기하든지, 그리스도를 포기함으로 그의 정체를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언제나 한 사람이 죽음으로 모두를 살게 하는 희생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음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심에 있음을 일관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조롱하는 자들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다 집어치우고 네가 살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네 스스로를 살려 내면 우리가 너를 믿어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주 원초적인 유혹으로 예수님을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세상이 주님께 요구하는 이 논리를 철저하게 온몸으로 홀로 거부하셨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모두를 죽이는 삶이 아니라 모두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그 길을 홀로 걸어가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나를 죽임으로 모두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희생함으로 모두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하면 모든 상처가 치유되고 화목과 평화가 올 수 있지만 우리는 나 자신만 생각합니다. 내 자존심 하나 지키자고 모두를 불행스럽게 만들고 고통을 당하게 하며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아픔 속에서 살아가게 만듭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뒤를 좇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주님은 자신을 버리심으로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살게 하시는 길을 선택하셨고 그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오늘도 나를 고집하고 지독하게 나를 사랑하며 나를 희생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에 무관심한 이기적이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삶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더 구체적으로 나의 무엇이 깨어져야 하는지를 기도하십시오. 나의 어떤 모습이 성령의 불로 태워져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