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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두 번이나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인들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고지하셨음에도 그들이 믿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매우 지엄하고 강도 높게 책망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책망하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과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헬라어 단어들은 이전에 제자들을 꾸짖으실 때에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단어들이라는 점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사실을 믿지 않고 있었던 제자들을 매우 강도 높게 그들을 질책하시며 책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부활하실 것이라는 예고를 기억하지 못한 것은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통해서 그리고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을 통해서 두 번씩이나 주님의 부활하심을 알렸어도 그들이 거듭 믿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대단히 약화되었으며 심지어 예수님께서 안 계시던 그 며칠 간의 짧은 시간 동안에도 그들의 마음이 매우 완악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임을 주께서 아시고 바로 이 부분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가장 많은 시간 주님과 함께 했고 주님께 직접 복음을 전해 들으며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경험한 자들로 그들의 이 같은 연약한 믿음은 책망을 받아 마땅한 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또 전해주어도 그 복음을 거부하고 듣지 않는 것은 이제 그에 준한 하나님의 지엄하신 공의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옥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누군가에 의해서 그토록 수없이 복음을 들었어도 끝내 그 모든 것을 거부하고 불신하고 배척한 자들이 받게 되는 벌로서의 지옥의 영벌이라는 것으로 잊지 마십시오. 그렇게 바른 믿음이 무엇인지, 참된 구원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피를 토하듯 설교자들이 외쳤어도 한결같이 게으르고 나태하며 세상과 자신을 사랑한 거짓된 신앙의 자리를 고수한 그 결과는 영생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천국 문 앞에 가서야 결국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처럼 결국 성령을 통해 늦게라도 깨닫고 돌이켜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순교의 자리에 나아갈 자들이 있고 끝까지 돌이키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버려진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책망은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의 대상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온 천하 만민에게입니다. 모든 세상 모든 피조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의 나라들까지도 이 복음의 대상이 됨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명시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결코 유대주의 민족종교가 아닙니다. 만인을 위한 유일한 구원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결코 유대인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모든 나라의 민족과 열방이 그 복음의 대상이 됨을 주님께서는 강조하셨습니다. 구원에 있어 중요한 조건은 바로 믿음이고 그 믿음의 분명한 고백이 있는 자들 만이 외적인 증표로서의 세례에 참여함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아들여짐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받음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성령의 세례를 받아 구원받은 자에게 외적으로 이루어지는 징표 로서의 세례를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믿음을 거부하고 불신하는 자는 그것으로 인해 영원한 정죄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 회심한 자에게 세례는 주어집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믿음이 없거나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믿음과 세례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결합된 것으로 교회에 소속된 것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표식으로서의 세례가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7절과 18절의 말씀은 은사주의, 성령주의자들이 주로 인용하며 그들이 성령 운동의 근거로 삼는 구절들입니다. 귀신을 쫓고 방언을 말하고 뱀을 집으며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고 병든 사람에게 안수하여 나음을 입게 하는 이러한 표적이 따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 19절에서 주님은 뱀을 밟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뱀은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8 3~6절에서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뱀에게 물렸지만 무사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무엇보다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구절은 다른 복음서를 비롯해서 성경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절대로 오늘날에도 이 같은 일을 행해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는 근거가 되는 구절들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적은 사도 시대에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로마와 여러 세계의 지역으로 복음이 전파될 때 일시적으로 일어났던 이적들 일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교회가 처음 세워지던 때에 일시적으로 사도들을 통해서 복음의 능력을 더욱 강력하게 드러내시기 위해 한시적으로 이러한 이적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성도들은 오늘까지도 이러한 이적을 기대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일까요.. 사도 시대의 모든 이적들과 방언을 비롯한 여러 은사들은 복음의 전파되기 위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도 시대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더 이상의 이적이나 은사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시대가 마감되기까지 마지막 10년 동안은 이적에 대한 어떤 기록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5세기 16세기, 교회 개혁 시대나 청교도들에 의해서도 이러한 부분들이 강조된 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과 아우구스티누스 도 사도 시대 이후에는 기적과 은사가 점진적으로 감소하여 더 이상 이적이 일어나지 않음을 확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주후 160년경 몬타누스에 의해서 이단이 출몰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을 성령의 특별한 예언자로 자칭했고 황홀경 속에서 새 예언, 새 계시를 선포했습니다. 또한 성령의 직통 계시와 종말의 임박성을 강조하면서 강한 금욕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모든 성령 운동은 이 몬타누스주의의 부활이며 1906년도 미국 로스엔젤레스 아주사에서 일어난 윌리엄 시모어의 오순절과 유사한 현상이 일어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오늘날 성령의 역사로 이적과 은사와 축귀, 신유 같은 것들을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을 가지고 영생하는 믿음을 지키며 진리의 깨달음을 통해서 그 믿음을 고양시키는 일에 전무하는 것이 합당한 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개혁주의는 사도 시대의 모든 은사들과 이적들을 사도적 계시를 확증하기 위한 구속사적 표적과 은사로만 규정합니다. 교회의 기초를 놓는 과정에서 한시적으로 발생한 특별한 은혜로만 이해하고 믿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 1항은 이렇게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 이전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던 방법은 이제 그쳤다.’ 계시는 분명히 성경 66권으로 제한되며 종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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