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5 21:11
블레셋에 이어서 유다의 동쪽에 위치한 모압과 암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같은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이 두 민족이 이스라엘을 언제나 괴롭히며 고통을 가한 족속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압과 암몬이 유다를 훼방하고 후욕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었다고 말씀합니다. 모압과 암몬은 끊임없이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서 모욕하고 비난하며 적대적인 행위를 드러내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통 당하는 자기 백성들의 형편과 처지를 알고 계시고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면밀히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 반드시 그들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암과 암몬의 또 다른 악은 스스로 커서 그 경계를 침범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경계란 영역, 영토의 경계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그 경계를 그들이 함부로 침범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을 빼앗고 훔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크게 만들었다는 것은 스스로 교만해지고 자신들이 힘이 강하다고 여긴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빈번히 하나님의 선민인 유다의 국경선을 침범하면서 유다 백성들을 괴롭힌 자들이었습니다.
민수기, 사사기, 열왕기하, 사사기, 사무엘하, 느헤미야 등에는 이 모압과 암몬과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한 기록들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참으로 그들이 평화로웠던 시대가 거의 없을 만큼 주변 국가들에 의해서 고통을 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족장 시대에는 가나안 족속들에게 고통을 당했습니다. 헷 족속, 아모리 족속, 여부스 족속들이 언제나 이스라엘의 징계하시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출애굽 이전까지는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어지는 사사 시대에는 메소포타미아와 모압, 가나안과 미디안, 암몬, 블레셋 등에 의해서 고통을 당했고 통일왕국 시대에는 블레셋과 아람에 의해서 자주 침략을 당해야 했습니다. 분열 왕국 시대에는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의해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각각 멸망을 당하게 되었고 포로시대 이후로는 페르시아에게 그리고 뒤이어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과 셀루코스 왕조에 의해서 박해를 받게 됩니다. 신약 시대에는 로마 제국에 의해서 결국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타락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그리고 심판과 회복의 역사가 수레바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를 모두 채우고 있음을 그들의 역사는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여러 나라들로부터 압제와 괴롭힘을 당하도록 허용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고통의 역사를 통해서 모든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모든 죄 아래 있는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들을 향한 징계와 회복을 통해 결국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만드시는 섭리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결국 인간은 자기 밖에서 구원을 갈구하게 되는, 즉 메시야를 대망하게 되는 전적으로 무능하고 나약한 실존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교훈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그렇게 섭리하시고 인도하심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또한 동일한 방식과 섭리하심 가운데서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심을 모든 시대의 성도와 교회에게 하나님은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경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겪은 그 모든 일들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성경의 역사를 거울삼아 반드시 우리가 경계하여 깨어 있지 않게 되면, 돌이키지 않으면 동일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아래 놓일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신자의 삶 속에서도 악한 사람들로 인한 갈등과 고통이 있고 물질적인 어려움과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과 그 밖에도 여러 우리의 마음을 낙심케 하는 슬픔과 고독과 상실감과 배신감, 우울함 등을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일들이 인생을 지나가면서 우리가 닥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우리의 죄의 결과로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기도 하시지만 이 모든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우리의 구주되신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이고 결국 영원한 나라를 바라고 소망하는 견고한 믿음의 자녀들로 우리를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평안하고 안정된 삶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한다면 너무도 좋겠지만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만족스러울 때는 결코 간절히 하나님을 찾지 않는 어리석은 존재들임을 아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가 깨어 있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의 삶에 여러 시련과 고난들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인생의 목적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있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복을 받음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결코 없는 전적으로 죄악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적은 오직 이 악한 세상에서 오직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을 굳게 지키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모든 지체들을 사랑함으로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아감에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는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모든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바로 신자된 우리의 존재의 목적과 의미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목적과 그 이유에 대해서 무지한 채로 자신의 삶의 행복과 안전과 물질적인 번영 만을 위해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신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사랑하는 삶을, 그 거룩한 성도의 모든 의무들을 지극히 가볍게 여기며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위대하신 대속의 은혜를 쉬 잊은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결코 고요한 가운데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죄악으로 치우칠 때마다 이웃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포악하고 잔인한 이방 나라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채찍을 가하시고 고통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그들의 조상과 맺으신 그 하나님의 언약을 헌신짝처럼 여기고 언제나 자기들의 쾌락과 유익을 위해 우상을 숭배하는 삶을 살아갔을 따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보십시오.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저 나의 안위를 위한 것일 뿐 우리가 섬기는 것은 여전히 우리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과 그리고 이 화려한 세상이 아니라고 과연 정직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의 진리를 깨달아 무엇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앙하는 것인지를 올바로 아는 참된 신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참된 믿음이라 말씀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깨닫고 그것을 믿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