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7 22:08
마태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 시작됩니다. 아담을 거쳐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누가의 족보와 다른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가 유대적인 배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려 했던 반면, 누가는 이방인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14대를 한 묶음으로 해서 3기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1기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이며, 2기는 다윗에서부터 바벨론 포로기까지이고, 3기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입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이스라엘의 번영기를 나타내고 다윗부터 바벨론까지는 이스라엘의 쇠퇴기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는 이스라엘의 암흑기를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성취이고 그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자손들, 즉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든 민족과 열방을 초월해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의미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섭리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나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으로, 모든 택자들을 반드시 구원하심으로 그들을 영원한 구원의 기쁨의 웃음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되심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계보 속에는 오직 ‘이삭’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오직 택함을 입은 자들 만을 구원으로 부르시는 위대한 구속사의 분명한 흐름을 밝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야곱의 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서의 이름은 삭제되고 야곱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발꿈치를 잡은 자’로 그는 교활한 방법으로 장자권을 탈취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메시야의 계보 속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는 로마서 9장 13절의 말씀처럼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라는 말씀과 구약의 말라기 1장에서의 동일한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이 모든 택자 구원의 역사가 펼쳐지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속임에 능한 이 야곱은 이렇게 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게 되고 마침내 그 이름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스라엘’로 바뀌게 되고 그의 12아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보게 됩니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거짓과 기만에 능한 지렁이 같은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이루신 뜻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택하심은 결코 인간의 조건이나 행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성경은 야곱을 통해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은 유대인의 혈통이나 율법의 행위나 인간의 공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로 ‘감사하다’, ‘찬양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여기서도 장자가 아닌 유다가 야곱이 나은 아들로 기록되고 있는 것일까요..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은 아비의 첩인 빌하와 간통을 저지름으로 장자의 명분을 상실하게 됩니다. 둘째와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세겜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인하게 됨으로 장자의 축복을 잇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다는 도둑의 누명을 쓰고 요셉에 의해서 애굽에 볼모로 잡혀 있던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희생을 보여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과 예표가 되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야곱은 유다에게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치리자가 나오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창세기 49장 10절에서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과 그리고 유다로 이어지는 이 계보는 야곱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열조를 대표하는 것으로의 의미를 갖습니다. 북 이스라엘 멸망 이후에 하나님의 언약의 관계는 이제 유다를 통해서만 계승됨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유다의 형통을 따라서 태어나신 것은 이처럼 구원의 계보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계획과 뜻을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속사의 모든 역사의 흐름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선택과 작정에 의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모두 이 같은 하나님의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일의 결과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 모든 일에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