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9 22:01
‘웃시야’는 ‘여호와는 나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웃시야’는 ‘아마스’의 아들로 유다의 10번째 왕으로 등극하여 52년을 통치했습니다. 통치의 초기에는 정직하고 경건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으로 영토를 확장 시키고 예루살렘을 굳건히 하였지만 스가랴 선지자가 죽은 이후에 제사장 직분을 침해함으로 그 형벌로 문둥병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요담의 아들 ‘아하스’는 ‘여호와가 사로잡으심’이라는 뜻인데 요담의 아들로 20세에 왕위에 올라 16년간 유다를 통치했으나 그는 유다 열왕 중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는 이방인의 풍습을 좇아 아들을 우상의 제물로 바쳤고 성전을 훼파했으며 우상을 숭배하였고 이방의 악한 왕을 의지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는 강하게 하심’이라는 뜻입니다. 아하스의 아들로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한 아버지와 달리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라를 잘 다스린 자입니다. 그는 유월절을 회복하고 성전을 정화했으며 종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재임 14년째 되던 해에 병이 들자 그는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고 15년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이방의 바벨론 왕에게 보물고의 보화를 자랑했고 그로 인해 선지자 이사야의 꾸중을 들으며 후손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뒤이은 아들 므낫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아하스와 쌍벽을 이루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이방 종교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산당과 우상을 세우고 분향을 하며 혼합주의를 추구합니다.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고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며 궁극적으로 유다를 멸망케 하는 결과를 초래한 인물이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길 것입니다. 과연 이들은 구원을 받았을까.. 그렇다면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로 보이는 악인들조차도 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등장하는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웃시야의 죽음을 버림받음으로 볼 것인가 하나님의 징계로 볼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돌이켜 회개하지 않은 아하스의 경우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 보기에 어려움이 분명 존재합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이름이 모두 구원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버려진 악인들의 이름들이 예수의 계보에 등장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가롯 유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악한 자들까지 모두 사용하셨다는 의미이지, 메시야의 계보 속에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선민이며 왕으로 사용하셨고 메시야의 계보 속에 존재했어도 반드시 중생한 자는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심각한 죄를 범했어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끝까지 그의 택자의 신분이 보존된 자들도 존재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악한 부모님 밑에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자녀가 태어나게 된다면 그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부모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예수를 잘 믿었어도 끝까지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회심하지 못했으며 악을 행하다가 결국 버림받은 자로 나타나게 되는 자녀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악도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가로막을 수는 없고 그 같은 악인들이 메시야의 계보에 드러나더라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속의 역사는 도도하게 흘러가게 됨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느브갓네살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유다를 침공하게 하시고 왕과 그 신복과 백성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가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약탈하게 하셨습니다. 유다의 멸망은 스바냐서를 통해서 보듯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오랜 인내의 결과였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까지, 그리고 다윗에서 바벨론 이거까지의 족보를 살펴보았습니다. 11절부터는 바벨론 이거 이후 그리스도까지의 족보를 보여줍니다. 11~13절을 보겠습니다. 이 계보 속에도 생략된 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요시야와 여고냐 사이에도 여호야김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여고냐’는 여호야김의 아들로 그 부친과 같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한 자였습니다. 결국 그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최초의 왕이 됩니다.
예레미야 22장 30절은 여고냐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여고냐 때부터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메시야의 혈통에서 떠나게 되고 이제 여고냐의 후손 중에서는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왕이 나오지 않게 됩니다. 이유는 유다가 멸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메시야의 계보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고냐는 자식이 없는 상태로 죽게 되지만 이어 스알디엘이 다윗의 계보를 이어갑니다. 여기서 가장 난해한 문제가 생기는데 스알디엘은 여고냐의 아들이라고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반면 누가복음 3장에서는 네리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차이에 대해서 여러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이스라엘의 계대 결혼이나 양자 제도 또는 왕조 계승 관습에 의해서 혈통적으로는 스알디엘이 여고냐의 아들이 아니지만 여고냐의 양자로서 왕권을 계승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고냐의 혈통은 끊어졌어도 이스라엘의 왕권은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 가운데 계속 이어지게 되어서 결국 다윗 언약이 계속 계승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죄를 지은 아비가 있어 그가 하나님에게서 끊어지게 되더라고 그것은 그 아비의 문제이지 자녀에게까지 이어서 그 죄의 결과가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결코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믿음의 부모 밑에 불신의 자녀가 생길 수 있고 불신의 부모 밑에 잘 믿는 자녀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비밀입니다.
이어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룹바벨은 다윗 왕통이 끊어진 바벨론 포로 이후에 세워진 지도자로 그는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한 유대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임명이 되었고 스가랴 선지자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해 힘쓴 지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경건한 지도자 스룹바벨을 통해서 다윗의 위가 이어지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고냐의 타락으로 끊어진 듯한 메시야의 계보는 이렇게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언약을 파기함으로 하나님과 인간은 영원히 결별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심처럼, 성경은 메시야의 계보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성실하게 이어 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영원한 언약으로부터 결코 끊어질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3~16절을 보겠습니다. 아비훗에서 야곱에 이르는 아홉 명의 이름이 이 족보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이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이름들은 이 메시야의 계보 외에는 어디서도 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400년 동안에 존재했던 인물로 보입니다. 이들은 한 마디로 포로 시대 이후 숨겨진 다윗 왕가의 계보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이들에 대한 자료는 성경에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다윗 언약이 끊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고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기 위한 모든 길을 닦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요셉이 탄생했고 요셉이 아닌 성령에 의해서 그의 아내인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길을 닦아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우연히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주께서 닦아 놓으신 그 길이 마침내 우리 앞에 놓이게 됨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길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길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요시야까지 14대 그리고 여고냐 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로 구분됩니다. 그러나 이 족보 가운데는 여러 왕들의 이름들이 누락되어 있어 이스라엘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가 이렇게 의도적으로 구분한 것은 신학적인 메시지를 담기 위함입니다. 1기는 이스라엘의 전성기 2기는 패망기 그리고 3기는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이 땅에 오심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의 가장 빛나는 절정기가 오게 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메시야의 족보는 역사의 완성자이시며 구원을 성취하실 자, 구약의 모든 예언의 주인공이시며 역사의 정점에 서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구원의 역사는 인간의 모든 죄악을 인해 결코 끊어지지 않으며 인간의 모든 결함을 극복할 것이며 그 구원의 계획 속에는 이방의 나라와 민족들까지 반드시 포함된다는 진리를 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통해서 위대하신 구원의 역사를 펼쳐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 그리고 하나님의 그 성실하심의 큰 그림을 유대인들에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야는 의인을 부르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소망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도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는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택자의 명부에 우리의 이름이 나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는 것을 믿고 택자 구원의 완성의 순간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그 나머지 한 명까지 모두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을 신뢰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우리를 향하신 멈추지 않으시는 사랑과 긍휼을 기억하며 힘써 복음을 전함으로 이 위대한 구속자의 한 증인이며 그 구원 안에 포함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