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8 21:20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의 배후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다 알 수 없어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조각들은 하나님께서 그려 나아가시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데 모두 필요한 부부들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십니다. 인간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지만 그 하나님의 위대하신 뜻을 이루는 조각들로 존재할 뿐입니다. 헤롯도 동방박사들도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도 마리아와 요셉도 모두 그들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갔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어 나아가는 퍼즐의 조각들이었습니다. 인생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이루어 나아가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그 구속 역사의 신비한 그림을 구약을 통해 내내 예고해 오셨고 이제 그 그림을 신약 시대를 여시면서 펼쳐 나아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그림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이고 그것을 보지 못하면 유대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앙 속에 갇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를 왜 믿는 궁극의 이유와 목적을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도 유대주의자들과 동일한 불신자들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의 역사를 마태복음을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쓰임을 받게 되었는지를 성경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어떻게 조용히 이 세상 속에서 시작되어갔는지 오늘의 본문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던 때에 일어난 일들과 배경을 마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온 우주의 보물이셨지만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신 사실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이 이토록 역사 속에서 희미하게 시작되고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온 세상이 그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온 우주의 왕이시지만 이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동네에 지극히 평범한 여인의 태속으로부터 말구유에 뉘이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세상이 알지 못하도록 오셨고 그가 오셨어도 세상은 그를 영접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메시야의 탄생의 모습은 어떤 유대인들도 기대한 모습이 아니었고 그들이 인정할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의 메시야였습니다. 마태복음은 이 충격적인 메시야의 탄생의 모습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꿈꾸던 메시야의 이미지를 여지 없이 산산조각 내 버리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알고 믿고 기대하고 있었던 메시야에 대한 모든 것은 허상이며 가짜라고 웅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의 이 땅에서의 시작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탄생의 이야기를 이제 마태복음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시던 때의 유대의 왕은 헤롯이었습니다. 이를 밝히는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이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사실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며 이스라엘의 왕위의 계승이 단절되었고 이제 이방인을 통한 이스라엘의 통치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49장 10절은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예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실로’는 곧 메시야를 뜻하는 것으로 볼 때, 결국 진정한 왕이신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게 되면 유다의 모든 왕권의 계승은 중단이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정통 유대인이 아닌, 헤롯이 유대의 왕으로 있게 된 것은 이 예언이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 에돔의 후예인 이두매 사람입니다. 주전 73년경 태어나서 BC 55년 경부터 BC 4년까지 유대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원로원으로부터 유대의 왕이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가진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25세에 이미 갈릴리의 총독으로 임명이 되었고 탁월한 정치력으로 로마군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숙적들을 모두 제거했으며 계속 교체되는 로마의 황제들로부터 지속적인 총애를 받았을 만큼 매우 영리하고 교활한 자였습니다.
그가 ‘헤롯 대왕’ 이란 칭호를 받게 된 것은 그의 업적 때문이었는데 그는 로마의 도움을 받아 큰 흉년과 같은 여러 어려운 정치적 고비를 잘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항구와 바닷가에 ‘가이사랴’와 ‘디베리아’ 라는 큰 도시를 건설했으며 로마의 우상들과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개의 사원을 건축하였고 아테네, 스파르타, 두로, 시돈, 비블로스, 베리투스, 다메섹, 안디옥 등에 웅장한 건축물을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BC 20년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이 성전은 그가 죽기 전에 완공이 되지 못하고 결국 AD 68년 경에 완공이 됩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AD 70년 로마에 의해서 모두 완전히 파괴됩니다. 오늘까지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지극히 일부분의 성전의 잔재는 바로 이 헤롯이 지은 성전의 일부입니다.
헤롯은 10명의 아내를 두었지만 아들들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것이라 여기고 일부 왕비와 자기의 아들을 죽일 정도로 잔인하고 포악한 인물이었습니다. 헤롯은 BC 4년에 치명적인 병에 걸려 70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때는 그럼 정확히 언제가 될까요.. 헤롯이 BC 4년 경에 죽었으니까 헤롯이 죽기 전에 예수께서는 태어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연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AD 1년에 주님이 태어나지 않으셨다는 얘기가 됩니다. 주전과 주후의 기준이 되는 주의 탄생의 때가 이렇게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이유가 여러분은 궁금하실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에는 BC와 AD로 구분하는 연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주후 6세기 경 수도사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에 의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연도를 계산하는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태어나신 해를 AD 1년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서 이를 연구한 결과 이 계산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마태복음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는 헤롯이 유대의 왕으로 있을 때 태어나셨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헤롯이 주전 4년에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최소한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나셨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계산이 됩니다. 따라서 성경의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이 태어나신 시기는 주전 6~4년 정도로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주전과 주후의 기준 점이 사실은 4~5년 더 뒤로 이동해야 정확한 주님의 탄생의 시점이 되는 것입니다.
헤롯이 이토록 살아생전에 권력에 집착하며 자신의 왕권을 지키는 일에 병적으로 질투와 시기심과 분노로 가득한 인물이었음을 밝히는 이유는, 그가 예수께서 태어나신 때를 시점으로 두 살 아래 유아들을 다 살해한 이 광기가 무엇 때문에 비롯된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그토록 동방 박사들로부터 예수의 탄생지를 캐 물은 음흉한 이유를 이제 여러분들은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수께서는 이토록 잔인하고 권력에 집착하는 포악한 헤롯이 통치하던 시기에 태어나셨습니다. 주님의 출생지는 베들레헴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으로 800m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지만 이곳은 이미 성경에서 자주 언급된 바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야곱이 그의 아내 라헬을 장사한 곳이고 룻과 보아스가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또한 다윗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입니다. 미가서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고 구약 성경은 이미 이곳에서 메시야가 탄생하실 것임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베이트’, 빵과 ‘레헴’, 집 이란 뜻으로 ‘빵집’이라는 의미가 되는 이 지역은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밀과 보리가 잘 자르는 비교적 비옥한 지대였기 때문에 아마도 ‘빵이 나오는 곳’ 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된 영원한 ‘생명의 빵’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빵의 재료가 되는 풍성한 곡식이 자라는 곳에서 태어나신 것과 결코 무관치 않다고 보여집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시던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왔다고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박사’에 해당하는 ‘마고이’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자들’ 혹은 ‘거짓 선지자’나 ‘마술사’를 지칭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기도 했고 헬라 세계에서는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의 사제를 의미했습니다. 이들은 바벨론이나 이집트에서도 성행하던 점성술을 연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천문을 관측하고 별의 움직임을 연구하며 이를 통해 왕실에 자문을 하며 종교 의식을 집행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사실 박사라는 번역보다는 천문을 연구하는 사제나 점성가가 실제 의미에 더 적합합니다.
‘동방’을 뜻하는 헬라어 ‘아나톨레’는 ‘별의 떠오름’ 또는 ‘해 뜨는 곳’이라는 의미로 동쪽을 가리키는데 이곳은 아마도 페르시아나 바벨론 일 것이라고 추측 되어질 따름입니다. 만약에 페르시아로 가정했을 때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약 805km 정도가 되는 매우 먼 거리입니다. 성경에는 이들이 세 명이라고 정확히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이 예수께 드린 세 예물을 통해서 세 명이라고 추론하게 되었을 뿐 정확한 인원과 그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성경이 명확히 밝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서 이 이방 나라의 동방박사들이 출연하게 된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이 결코 유대인들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의 민족과 열방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함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경을 그토록 오래 연구한 유대주의자들은 누구도 메시야의 탄생을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나실 것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을 보십시오. 이를 통해서 볼 때 구원은 결코 인간적인 어떤 조건이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구원은 오직 믿음을 선물로 주신 자들,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하신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방적인 은총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여러분은 여러분의 의지로 이 자리에 나아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불러 주셨기에 오늘도 이 자리에서 이 복음을 듣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동방에서 온 점성가들은 유대에서 왕과 같이 놀라운 인물이 탄생할 것이라 믿고 별을 따라온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엄밀히 말해 그들이 만나게 된 아기 예수께서 메시야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별을 연구하며 어떻게 보면 점성술, 일종의 점술을 좇아 예수께 나아온 자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무지하고 몽매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택하신 자들을 땅끝에서부터 불러 모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실 것을 성경은 예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동방의 이름 없는 지극히 가난하고 무지한 백성들이 살고 있던 조선에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들을 보내셨고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무 관련도 없는 동방의 작은 나라에까지 복음이 찾아왔고 그 복음이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까지, 바로 당신까지 찾아낸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임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동방에서 별빛을 보고, 이 어두움뿐인 세상에 참 빛으로 오시는 메시야의 탄생 앞으로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하셨듯이 오늘도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고 그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