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9 11:03
[요한복음 강해 모음]
2014.01. 12~ 2016.03 주일 오전 설교 입니다.
[요한복음 강해 1] '빛이 어둠에 비취되'(요 1장1-5절)
[요한복음 강해 2] '보내심을 받은 사람'(요 1장6-13절)
[요한복음 강해 3]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장14절)
[요한복음 강해 4]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요 1장15-18절)
[요한복음 강해 5]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요 1장19-28절)
[요한복음 강해 6] '하나님의 어린양' (요 1장29-34절)
[요한복음 강해 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요 1장35-42절)
[요한복음 강해 8]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시다' (요 1장43-51절)
[요한복음 강해 9]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적' (요 2장1-11절)
[요한복음 강해 10]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요 2장12-17절)
[요한복음 강해 11]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요 2장18-25절)
[요한복음 강해 12] '거듭나지 아니하면' (요 3장1-8절)
[요한복음 강해13]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장9-15절)
[요한복음 강해 14]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요 3장16-21절)
[요한복음 강해 15]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장22-30절)
[요한복음 강해 1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요 3장31-36절)
[요한복음 강해 17]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요 4장1-6절)
[요한복음 강해 18] '누구인 줄 알았더면' (요 4장7-15절)
[요한복음 강해 19]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장16-26절)
[요한복음 강해 20] '나의 양식' (요 4장27-34절)
[요한복음 강해 21]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 (요 4장35-42절)
[요한복음 강해 22]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요 4장43-54절)
[요한복음 강해 23]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 5장1-18절)
[요한복음 강해 24]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함이라' (요 5장19-23절)
[요한복음 강해 25]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요 5장24-29절)
[요한복음 강해 26]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요 5장30-38절)
[요한복음 강해 27]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요 5장39-47절)
[요한복음 강해 28] '시험코자 하심이라' (요 6장1-15절)
[요한복음 강해 29]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요 6장16-27절)
[요한복음 강해 30]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은' (요 6장28-40절)
[요한복음 강해 31] '하늘로서 내려온 떡' (요 6장41-51절)
[요한복음 강해 32] '참된 양식 참된 음료' (요 6장52-59절)
[요한복음 강해 33]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요 6장60-65절)
[요한복음 강해 34]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요 6장66-71절)
[요한복음 강해 35]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요 7장1-13절)
[요한복음 강해 36]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요 7장14-18절)
[요한복음 강해 37]'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요한복음 강해 38]'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러라'(요 7장25-36절)
[요한복음 강해 39]'누구든지 목마르거든'(요 7장37-44절)
[요한복음 강해 40]'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요 7장45-53절)
[요한복음 강해 41]'예수를 시험함이러라'(요 8장1-11절)
[요한복음 강해 42]'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장12-20절)
[요한복음 강해 43]'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장21-30절)
[요한복음 강해 44]'참 내 제자가 되고'(요 8장31-32절)
[요한복음 강해 45]'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요 8장33-40절)
[요한복음 강해 46]'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요 8장41-50절)
[요한복음 강해 47]'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장51-59절)
[요한복음 강해 48]'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장1-12절)
[요한복음 강해 49]'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요 9장13-34절)
[요한복음 강해 50]'그를 만나사 가라사대'(요 9장35-41절)
[요한복음 강해 51]'나는 양의 문이라'(요 10장1-10절)
[요한복음 강해 52]'나는 선한 목자라'(요 10장11-21절)
[요한복음 강해 53]'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장22-42절)
[요한복음 강해 54]'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요 11장1-16절)
[요한복음 강해 55]'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장17-35절)
[요한복음 강해 56]'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요 11장36-44절)
[요한복음 강해 57]'저를 믿었으나..'(요 11장45-57절)
[요한복음 강해 58]'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요 12장1-8절)
[요한복음 강해 59]'큰 무리가..'(요 12장9-19절)
[요한복음 강해 60]'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요 12장20-26절)
[요한복음 강해 61]'내가 땅에서 들리면'(요 12장27-33절)
[요한복음 강해 62]'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였으나..'(요 12장34-43절)
[요한복음 강해 63]'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 하리라'(요 12장44-50절)
[요한복음 강해 64]'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장1절)
[요한복음 강해 65]'너를 씻기지 아니하면'(요 13장2-11절)
[요한복음 강해 66]'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장12-20절)
[요한복음 강해 67]'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요 13장21-30절)
[요한복음 강해 68]'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장31-38절)
[요한복음 강해 69]'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 14장1-3절)
[요한복음 강해 70]'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장4-11절)
[요한복음 강해 71]'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요 14장12-17절)
[요한복음 강해 72]'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요 14장18-24절)
[요한복음 강해 73]'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장25-31절)
[요한복음 강해 74]'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요 15장1-6절)
[요한복음 강해 75]'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장7-11절)
[요한복음 강해 76]'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요 15장12-16절)
[요한복음 강해 77]'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장17-21절)
[요한복음 강해 78]'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요 15장22-27절)
[요한복음 강해 79]'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요 16장1-7절
[요한복음 강해 80]'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요 16장8-15절)
[요한복음 강해 81]'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6장16-24절)
[요한복음 강해 82]'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장25-33절)
[요한복음 강해 83]'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장1-5절)
[요한복음 강해 84]'저희를 보전하사..'(요 17장6-12절)
[요한복음 강해 85]'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요 17장13-19절)
[요한복음 강해 86]'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요 17장20-23절)
[요한복음 강해 87]'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요 17장24-26절)
[요한복음 강해 88]'아버지께서 주신 잔을..'(요 18장1-11절)
[요한복음 강해 89]'곧 닭이 울더라'(요 18장12-27절)
[요한복음 강해 90]'내가 왕이니라'(요 18장28-40절)
[요한복음 강해 91]'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 19장1-16절)
[요한복음 강해 92]'자기의 십자가를 지고'(요 19장17-22절)
[요한복음 강해 93]'다 이루었다'(요 19장23-30절)
[요한복음 강해 94]'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기를 구하매..'(요 19장31-42절)
[요한복음 강해 95]'막달아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요 20장1-10절)
[요한복음 강해 96]'마리아야 하시거늘..'(요 20장11-18절)'(요 1장15-18절)
[요한복음 강해 97]'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장19-23절)
[요한복음 강해 98]'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요 20장24-31절)
[요한복음 강해 99]'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요 21장1-14절)
요한복음 강해 41 /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 <요한복음 8장 1~11절>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만큼 악한 마귀가 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역사 속에서 해하고자 했던 노력도 집요함을 볼 수 있다.
오늘 마귀의 유혹을 이겼다고 해서 내일 방심해서 안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넘어질 때까지 사탄과 마귀는 결코 포기를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던 그들의 계획이 좌절된지 얼마되지 않아 그들은 또 다시 예수를 올무에 묶을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 어떤 사건이 벌어지자 이를 빌미로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도전 해 오고 있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에 잘 나타나고 있다.
1절을 보라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7장 53절을 보면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 집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감람산으로 가셨다고 적고 있다.
에수께서는 왜 감람산으로 올리브 산으로 가신 것일까..
짧은 공생에 기간이셨지만 그분은 이 땅에 마땅히 머물 곳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던 주님이시다.
천하가 그분의 것이요 만물이 그 분의 소유이시지만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집한 채 소유하지 않으셨다.
동가식 서가숙 하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그렇게 이 세상에서 형편없으신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셨던 것이다.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분들이여..
부디 있는 것에 족하고 더 이상 이 세상에 것에 집착하고 더 넓고 더 큰 것에 과도히 집착하지 말라.
심령이 가난하고 소박한 마음에 천국과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은 더 뚜렷하게 각인되어 지는 법이다.
감람산, 그곳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또는 홀로 자주 가시던 장소였다.
그곳은 주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깊은 기도 가운데서 독대 하시던 곳이었다. 우리에게 이러한 하나님을 뵈옵는 고정된 장소가 필요 능력을 공급받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괴로움과 고통과 어려운 문제들을 싸매고 흔들림이 없이 나아 갈 우리만의 감람산,
세상에서 지치고 힘에 겨울 때 누구도 나를 돕는이가 없이 고독할 때 얼굴을 깊이 파 뭍어 주를 간절히 부르며 도움을 청할 여러분만의 감람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이 치이고 사명의 길이 우리를 힘겹게 할 때 언제라도 달려 나아가 엎드릴 수 있는 곳이, 그 고요한 시간이 여러분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여러분의 감람산은 어디인가..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2절을 보라.
‘그분께서 아침 일찍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나아오매 그분께서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핍박이 가시화 되고 언제 어디서 또 다시 어떤 위험을 당하실지 알 수 없는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결코 지체하지 않으시고 주께서 전하셔야 할 복음을 전파 하시는 사명을 힘있게 감당하고 계셨다.
‘아침 일찍’, 동이 트자 마다의 새벽을 의미한다.
주께서는 어디로 향하셨는가..
또다시 성전으로 나아가셨다. 그리고 많은 백성들이 그 이른 시간에 주님께로 나아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아침 이른 시간, 새벽부터 주께서는 일어나셔서 성전으로 향하셨다.
이른 새벽 시간 기도하러 말씀을 가르치고 또 말씀을 들으러 교회로 향하는 것은 주님을 닮는 귀하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루를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셨다는 것을 잊지 마라.
여러분은 하루는 언제 시작되는가..게으름과 필요 이상의 잠은 죄인 것이다.
메시야가 있는 곳에 복음이 있고 복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든 그 복음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이른 시간에 온 백성이 그분께 나아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전하고 있는 이 복음이 진실된 복음인지 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인지를 더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어 복음을 변질 시키고 예배를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가
모두 성경을 통해 올바른 원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탄절이 교회에서 음악회를 하는 날인가..온통 이교도들이 지키던 악한 풍습을 따라 트리를 장식하고 성탄의 의미를 세속적으로 더럽히는 가치들에 몰두하면서 신자가 흥청망천 성탄절을 지나가는 것이 복음의 정신인가..
그런 복음을 따라가다가는 참된 진리에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다.
언제나 메시야의 주된 사역은 복음을 선포하시는 일이었다.
그 분은 항상 그분이 계셔야 할 곳에서 하셔야 할 일에 언제나 집중 하시는 분이셨다.
성도는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자들인가..
성도는 노래방과 클럽을 기웃거리는 자들인가..성탄절에는 케익을 먹어야 하는 무개념의 사람들인가..
크리스마 세일 기간에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인가..
주일에도 평일에도 성도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들인지를 생각하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예수를 속히 제거하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온 백성들이 다 나오는지라..’ 라고 했다.
다 나아왔다고 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 빈부귀천을 떠나 여러 사람들이 주를 좇고 있었다.
그를 따르는 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 복음에 귀를 기울인 자들은 많지 않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님께서는 새벽부터 성전에 나아오셔서 모여든 많은 무리들을 향해서 무엇을 하셨는가..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라고 했다.
가르치셨다. 언제나 그분은 메시야로서 그분이 하셔야 할 일에 집중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언제나 우리가 몰두해야 할 일이 있다.
바쁘고 분주한 삶이지만 이른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그 가운데서 언제나 우리가 집중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바쁘게 무엇인가 내 자신이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들을 열심히 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언제나 가장 우선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다.
그일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고 참된 진리와 그 성경에 입각한 교리들을 익히고 배우고 우리가 아는 이 복음과 진리를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목적이며 본질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이른 아침부터 복음을 전하고 계셨다.
주님도 열심히 일하시지만 마귀라는 놈도 쉬지 않는다.
그 이른 시각에 또 다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성전으로 들이 닥쳤다.
3, 4절을 보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그분께 데리고 왕서 그녀를 한 가운데 세우고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나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이 등장하고 있다.
걸출한 개혁주의 목회자였던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는 이 부분을 강해하면서
아마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일부르 간음의 범죄를 모의했다고 설명한다.
그 증거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사람이 여인 뿐이었음을 지적한다.
간음한 남녀를 모두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율법이었다 그럼 남자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또한 간음의 현장을 잡았다는 이야기는 간음이 일어날 것에 대한 상당한 확신이나 사전의 정보가 있어서 미리 잠복을 했다가 그 현장을 잡지 않는 한 그 당시 흥신소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남녀의 은밀한 일이 쉽게 발각되기 어려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현장에서 발각된 것이 그 증거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간음의 사건은 철저하게 준비된 우연한 사건이 아닌 계획적으로 의도된 사건이었다는 그는 주장하고 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추론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녀를 끌고 와서는 주님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 한 가운데 세웠다.
마귀는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하는 존재이다.
인간의 죄와 허물을 모두 들추어 내고 폭로하여 우리를 파괴 시키고자 하는 존재이다.
예수께서도 누가복음 6장에서 오른손 마른 자를 고치실 때 일어나 한 가운데 서 게 하신 장면을 볼 수 있다.
주님은 그를 고치시기 위해서 한 가우데 세우셨다.
주께서는 그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이제 그에게서 일어나게 될 기적을 보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 당하고 있는 그를 현실을 주목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짓밟고 수치와 모욕을 주기 위해서 모든 죄를 드러내는 존재임을 기억하라.
한 가운데 세웠다.
여인의 수치심을 극도로 자극하고 이 사건을 많은 사람들이 주목 하도록 만들어 예수께서 어떻게 대응하실지에 대해서 그 결과를 이슈로 삼고자 하고 있었던 그들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다.
그러면 그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모세의 법에 따라 그 자리에서 돌로 쳐 죽일 일이지 왜 예수께로 데리고 왔을까..
여기에는 다분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케이스를 예수께서 어떻게 다루실지를 보며 이 일의 결과로 인해서 그를 함정에 빠뜨려고 했던 것이다.
5절을 보라.
‘이제 모세는 율법에서 이러한 자를 돌로 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거니와 선생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나이까 하니라’
이 말씀은 레위기 20장 10절과 신명기 22장 22절의 적용이다.
모세의 율법대로 죽여야 하느냐 아니면 당신의 가르침대로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야 하느냐 예수를 시험코자 했다.
만약 자비를 베풀어 그녀를 살리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그녀를 죽이면 예수께서 세리와 창기가 바리새인들 보다 먼저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자신을 일컬어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 하신 자신의 말씀을 거스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 3장 17절에서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아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신 말씀을 스스로 어기시는 것이 되는 셈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교활하게 예수께서 그를 좇는 많은 무리들 앞에서 스스로 모순에 갖혀 무너지기를 바랬던 것이다.
예수 앞에 끌려 온 여인을 보라. 이래도 저래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여인이다.
지금 이 여인의 모습은 누구의 모습인가..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결코 지금의 이 정죄 아래서 자신을 건져낼 수 없는 바로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죄인인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꼼짝없이 돌에맞아 죽을 수 밖에 없는 간음한 여인, 바로 모든 죄인들, 우리 자신의 실존인 것이다.
오직 주님만이 그녀를 살리실 수 있는 상황이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우리의 자녀와 가족들을 여러분을 살리실 유일하신 메시야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지금 의기양양하게 예수의 답을 듣고자 하고 있었다.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라고 그들은 예수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도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피할 수 없이 예 든, 아니오 든 답해야 할 순간이 반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들이 이렇게 집요하게 예수께 질문을 퍼뭇는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설명한다.
6절에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예수를 고소할 조건을 만들기 위해 예수를 시험하고 함정을 판것 이라고 성경은 이 간악한 모든 의도를 폭로하여 기록하고 있다.
세상은, 악한 사탄과 마귀는 지금도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넘어 뜨리고 우리를 절망에 빠뜨릴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어떤 일로든 신자가 믿음을 잃어 버리고 시험에 들고 파산할 일들을 계획하고 그것으로 우리를 몰아 간다.
도저히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문제들 앞에 서게 한다.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 물질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녀들이나 가족의 문제를 두고 혹은 우리의 건강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의 믿음을 바닥까지 끌어 내리고 이래도 믿음을 가지겠느냐고 그래도 당신이 신자인지를 확인하려 든다.
성도들이여..
마귀가 파 놓은 함정에 걸려드는 자들이 되지 마라.
우리에게는 현장에서 잡혀온 간음한 여인처럼 지금 이 상황을 피할 길이 없지만 주님께는, 주님의 손에는 반드시 답이 들려 있음을 기억하라.
주님의 답변을 기다리는 자들을 향해서 그들의 의도를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셨다.
땅에 몸을 굽혀서 무엇인가를 쓰셨다고 했는데 많은 설교자들은 이 부분을 임의대로 해석해서 그 내용을 추측한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
주께서 쓰신 내용이 중요한 말씀이라면 성경은 반드시 그 내용을 우리가 알고 깨닫도록 기록으로 남겨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주께서 기록하신 내용이 무엇인지 알만한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주께서 쓰시고자 한 내용이 무엇인지가 중요하기 보다는 주님께서 왜 그같이 행동하셨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같은 행위의 시점과 상황을 유의해서 보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얘기를 들은 직후에 주님은 어떤 응대도 하지 않으시고 땅에 글을 쓰시고 계셨다.
이러한 주님의 행동의 의도는 바로 너희들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 부분은 8절을 설명할 때 이어 가도록 하겠다.
7절을 보라
‘이에 그들이 계속해서 그분께 물으니 그분께서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 하시고
8절에 ‘다시 몸을 구부리시고 땅에 쓰니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질문하며 주님을 괴롭히고 있었다.
자신들이 유리할 때는, 상대의 약점을 보았을 때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요구하고 주장하고 압박한다.
그것이 이 세상의 악인들의 모습이다.
자신들이 유리할 때는 끝까지 밀어 붙인다. 자신들이 불리할 때는 슬그머니 꼬리르 뺀다.
예수께서는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슴에 깊이 남겨질 명답으로 그들의 양심을 공격하셨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너희 스스로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부터 먼저 돌을 들어 그녀를 내리 치라고 주께서는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는 그럼 지금까지 이 여인의 죄보다 더한 그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는 말이냐..주께서는 그들의 양심에 직격탄을 날리셨다.
7계명을 어긴 것만이 죄가 될까..
간혹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볼 때 마음이 참으로 답답함을 느낀다.
어떤 사건이 터지게 되면 그 사건에 중심에 선 사람만이 언론이나 여론의 뭇매를 맞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러면 과연 그 사람만 죽을 죄를 진 것인가..
그 사람을 그렇게 욕할 자격들이, 그만큼 도덕적으로 모두들 깨끗한 사람들인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사람의 잘잘못을 떠나서 마치 한 사람을 매장이라고 시킬듯이 몰아 붙이는 언론도 광분하는 대중들도 모두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정상이 아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죄를 정죄할 일이지 사람을 미워하거나 그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일은 반드시 지양해야 할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죄보다 못한 처벌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죄 이상의 처벌을 마음의 괴로움과 고통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누구든지, 어떤 죄인이든지 다시 일어설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잘못은 잘못이고 다시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에서 돌이켜서 새롭게 될 수 있는 길은 열어 주어야 한다.
말세의 사람들이 왜 이렇게도 잔인하고 포악한지 참으로 염려스러운 마음이 그지 없다.
잘못을 한 사람은 곧 바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가서 난도질을 당해 버린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고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그 자리에 서게 되면 단언하건데 뼈도 못추릴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성도들이여 지금은 구경할 수 있어도 다음은 우리가 구경꺼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부디 성도들만이라도 그러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죄를 지어 추락하는 사람들, 실수해서 넘어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안타깝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우리에게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죄는 미워하고 멸시하며 혐오해야 하겠지만 죄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용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도 모두 씻을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은 죄와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시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 다만 드러난 그 말이나 행동이나 결과만을 단죄할 뿐이다.
분명히 죄라고 말하고 죄를 인식시켜 회개하며 회개케 해야 할 뿐이다.
그러므로 죄를 미워하되 사람에 대해 미움을 갖는 것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8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귀찮다는 듯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을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며 들을 가치가 없다고 여기시는 주님의 의도하신 태도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계략에 전혀 말려 들지 않으시겠다는 주님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무슨 말을 할 때 그래서 그 하는 말에 전혀 관심이 없을 때 우리는 다른 행동을 함으로서 이러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예비군 훈련이나 민방위 훈련받는 장소에 가면 단체로 이와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두다 앞에서 말하는 강사에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신문을 얼굴에 덮고 있는 사람, 코구멍을 파고 있는 사람,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
마귀가 무슨 말이든 우리의 영혼을 어지럽히는 유혹과 공격을 가해 올 때 우리는 이렇게 딴정을 피우며 철저하게 마귀의 말을 무시해야 할 것이다.
관심도 주지 말고 혼자 지껄이든 말든 전혀 이에 무관심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귀한 지혜를 주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의 대부분의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은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여러분에게 대안이 있는가..
무엇이 달라지는가.. 근심과 염려만 늘어날 뿐이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과도하게 세상에서 들리는 말들을, 세상 사람들의 말들에 귀기울이다 보면 여러분의 믿음이 파산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9절을 보라.
‘그들이 그것을 듣고는 양심에 가책을 받아 나이가 가장 많은 자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하나씩 하나씩 빠져나가매 오직 예수님만 남았고 그 여자는 한 가운데 서 있더라’
라고 적고 있다.
모두 찔림을 받아 뒤로 물러갔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 갖는 능력이다.
외식하며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종교인들을 깨뜨리는 길은 그들의 양심을 공격하는 것이다.
짐승같이 달려들어 주님을 기어히 찢어 놓으려 하던 자들의 양심이 찢겨져 버렸다.
그들은 수습하기 힘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결국 모두 뒤로 물러나 버렸다.
아무도 주님의 예리한 검과 같은 말씀을 듣고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간심장은 없었다.
죄를 이야기하면 불신자라 하더라도 이렇게 사람들은 주춤하고 뒤로 물러난다.
이렇게 물러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죄를 말해도 물러나지 않은 사람은 그야 말로 화인 맞은 양심이다.
끝까지 하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사람이 목사이고 성도이면 그 세상은 끝난 세상이다.
예수님과 그 여인만 결국 그 자리에 우두커니 남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죽일듯한 기세로 간음의 현장에서 끌려 왔던 여인이었다.
모든 사람들 앞에 수치스럽게 세워졌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주의 말씀에 모두 뿔뿔히 흩어져 버리고 오직 주님과 그 여인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주께서는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어 그녀를 보둠고 게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기다려 주시고 나에게 기대하시고 나를 또 다시 용서해 주시는 분은 누구이신가..
오직 예수, 주님 뿐이다.
모든 마귀의 빗발치는 고소와 정죄로 부터 우리를 막아 서 주실 분이 누구이신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 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 예수 오직 예수님 뿐
내게 가장 귀하고 귀하나 비바람이 칠 때와 폭풍 몰아 칠 때에
그 언제나 날 지킬이 오직 예수
10절을 보라
‘예수님께서 일어나사 그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음을 보시고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라고 기록하고 있다.
니고데모의 말을 듣고 모두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 버렸듯이 또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아무도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떠나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진리는 떠날 자들을 떠나게 하고 더 가까이 다가와야 할 자를 더 가까이 부르는 힘이 있다.
이제 자신의 말을 가로막거나 방해할 자들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신 주께서는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 잡혀온 그 창기같은 여인에게 말을 걸어주셨다.
죄인들에게 세리와 창녀들에게 말을 걸어 주시는 주님,
아무런 소망이 없고 그 어떤 선도 의도 존재하지 않는 우리에게 여전히 말을 걸어 주시는 주님이시다.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고,
아무도 나를 도울자가 없을 때, 절망이 엄습하고 두려움이 군사처럼 몰려 올 때, 내게 다가오셔서 우리의 어깨를 감싸 안으시는 이가 누구이신가..
우리의 떨리는 손을 꼭 붙잡아 주시는 분이 누구이신가..
그 주님이 오늘 당신 곁에 함께 하시는데 무엇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절망한다는 말인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권면 하시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끌어 가시는 자애로우신 주님이심을 기억하라.
그 누구도 우리에게 기대하지 않고 말을 거는이 없어도, 죄로 인해 나 자신도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만신창이가 되어 있어도 여전히 내게로 다가오셔서 ‘아무도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다’ 라고 말씀해 주시는 그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심을 기억하라.
너무나도 자애로우신 예수님, 인생들이 가장 비참해 진 그 순간에, 가장 수치스럽고 내 스스로도 내게 실망하여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가운데서도 그분은 우리 곁에 다가 오셔서 말을 걸어 주시는 분이시다.
눈을 들어 보거라 너를 정죄하던 자들이 아무도 없지 않느냐
누가 감히 너를 고소하며 비난한다는 말이냐
너는 내 피로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한 내것이 아니냐..
이것이 죄인들을 향하신 주님의 음성이다.
땅 바닥에 글을 쓰시며 재잘 거리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해서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으시며 상종하지 않던 주님께서 몸을 일으키셔서 죄인인 여인을 독대하여 그녀를 다독이고 계셨다.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있느냐
정죄하는 자가 어디있느냐..’
언제나 그렇게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이시다.
율법은 우리를 짓누르고 고소하며 고발하며 양심에 불화살을 쏘아 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언제나 우리에게 피할 곳을 도피성을 제공해 주신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의 은혜이며 견인의 은혜인 것이다.
여인은 고개를 들어 주께 대답한다.
11절을 보라
‘그녀가 이르되 주여 아무도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시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추측하건데 아마도 그녀의 뺨에서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주여 없나이다..’
방금 전까지 그녀 주변에는 살기 등등한 유대주의자들이 겹겹이 그녀를 싸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녀는 그 죽음의 위기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아마도 예수님이 아니셨다면 돌무더기에 속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갔을 여인이었다.
죄가운데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고통 당할 인생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혀 그 지옥의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 지옥의 고통에서 우리는 영원히 해방된 것이다.
우리의 모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의 공포를 모두 걷어 내 주신분이 바로 우리의 메시야 이시다.
참으로 감사하신 주님 아닌가..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내 영혼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릴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께서는 죄 가운데 있어 만신창이가 된 여인의 심령을 보셨다.
그리고 그녀를 정죄하기 보다는 가장 인자하심으로 그녀에게 자애로우신 손을 내 미셨다.
‘보아라 아무도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구나.. 나도 너를 정죄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단다’ 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 죄로 부터 율법으로 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을 다시한번 나타내셨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를 용서하시고 정죄하지 않으신 것으로 끝이 아니셨다.
이어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다.
‘가서’ 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세상으로 가야 한다. 다시 유혹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다시 내가 죄를 범하여 살아가던 세상 속으로 우리는 들어가야 한다.
주일 예배를 통해서 마음을 추스리고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다시 충천하는 힘을 얻어 교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의 삶으로 돌아가야 만 한다.
다시 그 자리에서 또 싸워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때마다 우리는 더욱 강해져야 만 한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앞으로 또 죄를 지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인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주저앉고 타협하던 그런 반복되는 모습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갈 수록 주의 은혜가 낙엽처럼 쌓여 갈수록 그것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어 열매를 결실하는 힘찬 믿음으로 도약 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주께서는 반드시 택하신 자녀에게 죄인에게 찾아오신다. 죄를 지어도 주께로 나아 올 수 있다 구원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사함 받고 나서는 이제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그 은총을 헛되이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는 신자가 아닌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을 때 새로운 성품을 우리안에 주입하셨다.
그것은 이제 죄를 이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픈 마음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픈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무치는 갈증과 그 말씀을 알고자 하는 왕성한 욕망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미하신 말씀을 통해서 구원과 성황에 관한 탁월한 진리를 깨달아 갈 수록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도덕적이며 사랑을 품은 나아가 성령의 열매들이 결실 되어져 가는 신자로 탈바꿈 되어져 가는 일들이 거듭난 성도 안에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점점 굳건하여지는 믿음, 좀처럼 넘어지지 않고 굳센 군사처럼 든든히 서가는 믿음이 되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켜 가시고 우리 안에 두신 자신의 영광을 거두어 가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 어떤 인간도 자신 안에 있는 악을 저지하고 누를 수 있는 힘과 권세를 가지지 못한다
오직 예수께 나아갈 때 그를 붙잡고 의지할 때만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와 유혹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주를 의지할 때 우리 또한 우리를 위협하며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하는 악한 사탄의 의도를 간파하고 이에 올바르게 대처하며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메시야가 가시는 길을 저지하고 가로막고자 해도 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복음서는 보여준다.
하나님의 뜻대로 인생은 오늘도 흘러 가는 것이다.
질곡이 있고 시험이 있으며 마귀의 유혹과 훼방이 있고 성도는 고난을 당할지라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유유히 흘러가고 진행됨을 기억하라.
구주께서 가신 길도 결코 평탄하신 길은 아니었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준다.
그 모든 길에서 주님께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시고 견고하게 사명의 길을 걸어가셨다
우리의 힘만을 인생의 모든 난제들을 그 어려운 순간들을 지나갈 수 없다.
언제든 우리에게 완전한 평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의 평안은 내일의 환란을 위한 대비와 준비의 시간일 뿐이고
오늘의 모든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찾아올 평안을 위한 웅장한 전주곡일 뿐이다.
매순간 주님을 십자가를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감이 중요하다.
견고하게 주를 의지하며 날마다 우리를 붙드시고 이끌어 가시는 주와 함께 인생을 걸어감이 중요할 뿐이다.
가장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서도 우리의 메시야이신 주님은 침착하시게 모든 상황을 통제하시면서 그 사건을 통해서 찬란한 복음의 아름다움을, 그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죄인들을 향하신 메시야의 그 따뜻하신 마음을 열어 보여 주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기를 원한다.
그 주님께서 동일하게 그 따스하신 눈빛으로 우리에게 여전히 말씀해 주신다.
너를 고소하는 자들이 어디에 있는냐..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라..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이끌어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과 위로를 얻어 여러분에 주어진 길을 힘차게 걸어 가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