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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상의 오류로 오디오 파일을 올리지 못해 설교 원고 전문을 게시 하였습니다. 

많은 양해 바랍니다. 



디도서 강해 13

이 여러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디도서 3장 6~8절>


구원은 인간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긍휼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지극히 선하시고 자비하시며 그백성을 사랑하시는 아가페적인 사랑에 기인하는 것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전적으로 무능하고 타락한 인간이, 자신이 그토록 완전히 부패해 버린 존재인지 조차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구원의 필요를 알고 구원의 자격을 갖추어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이러한 발상이나 생각이 얼마나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리와 다른 것인지를 우리는 올바로 분별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로 무엇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것처럼 그런 어리석은 인간중심의 자기 주체적인 노력을 통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명한 대형 교회의 한 감리교 목회자의 글을 보면서 다시한번 성경적인 신학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죄인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인간은 자기 구원을 위한 어떤 노력도, 어떤 자기 공로로 인정 할 만한 가치도 스스로 창출 해 낼 수 없는 절대적으로 무능한 존재임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출발된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가 의와 거룩과 선을 위해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은 지난 주에 이어서 이 진리를 매우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6절 말씀을 보라.

‘그것을 그분께서 우리의 구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위에 풍성하게 부으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회심과 중생에 이르게 하시기 위한 성령의 임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순절 이후 지금까지 성령은 택한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성실하게 일하시고 계신다.

결코 성령의 역사하심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심에 있어서 부족하거나 모자르지 않는다.

하나님은 결코 인색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택한 백성들을 모두 완전하게 구원하심에 있어 넘치도록 완벽하시고 완전하시며 결코 실수가 없으신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다.


이미 성령을 풍성하게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간구하거나 더욱 풍성하게 더욱 강력하게 역사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인간의 자기 주체적인 열심과 자기 도취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 여호와의 팔은 결코 짧지 않으시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분명하고 우리의 삶이 그것을 분명하게 증거 한다면 우리의 구원은 결코 불변 하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역사 하심과 그 풍성하신 은혜로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갈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성령이 모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게 실재적으로 임하는 통로이며 중개자가 되셨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성령이 임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지만 또한 더 나아가서 이제는 우리가 더욱 견고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의지하고 그 구속의 은총을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갈 때 이러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여기는 삶을 통해서 날마다 성령의 풍성하신 은혜를 누리게 됨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시다.


많은 경우에 성령을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신사도나 은사주의자들 가운데 십자가의 경험이 부재하거나 혹은 십자가를 경험 했다고 착각하는 경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철저하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고 지극히 겸비함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성령을 경험 했다고 하면서 전혀 겸손하지 않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자각 보다는 자신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는 자이고 넘치도록 복을 받을 자라고 자신을 여기는 이같은 왜곡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러나 신앙은 십자가를 관통한 신앙이 아닌 것이다.

성령만 주장하고 십자가가 없는 신앙은 구원 과는 무관한 신앙이다.

물론 십자가 만을 강조하고 성령의 역사 하심을 말하지 않는 것도 성립될 수 없는 신앙이다.


십자가 아래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견고한 자의식이 없는 성령의 체험이나 성령의 층만함에 대한 주장들은 모두 자기 기만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이 강조되지 않는 성령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위대성이 강조되지 않은 채 은사와 체험 만이 강조되는 그런 성령의 역사라 우기는 신앙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앙이 아닌 것이다.


7절을 보라.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후에, 우리가 영생의 소망을 따라서 상속자들이 되도록’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성령이 우리에게 부어진 이유는 오직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서 영원한 상속자들이 되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오직 주의 은혜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결코 우리의 노력과 공로와 선행 때문이 아니다.

구원을 얻기 위한 의롭게 되기 위한 그 어떤 인간의 노력 때문이 아니다.


구원을 위해서 무엇인가 노력하겠다는 것이 인간의 의지는 구원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펠라기우스와 알미니안의 사상이라면

하나님의 은혜없이 인간의 모든 노력과 열심만으로 은혜과 거룩과 경건에 도달하겠다는 것이 자기 주체적이고 실존주의에 기반한 자기 열정과 자기 의에 도취된 무모한 신앙이 되는 것이다. 


양자 모두가 기형적인 신앙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칭의와 영생의 소망과 양자됨과 영광의 상속자 됨의 그 풍성하신 은혜를 알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참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하심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러한 진리에 노출이 되고 깨달음을 얻어서 우리의 삶을 방향을 거듭 하나님께 향하도록, 이 세상이 아닌 영원한 나라가 되도록 우리의 마음을 돌리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도는 올바른 구원의 도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형언할 길이 없는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날마다 깊은 은혜와 깨달음을 얻을 수록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한 삶에서 그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거룩하고 경건한 의지가 사그러들지 않고 죄를 이길 힘을 유지하며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도의 생각과 마음에 허탄 한 것을 품고 이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고 몰두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급격히 흔들리고 은혜는 빠르게 유실되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감각적이고 유혹적인 것들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나누어 놓기 위해 우리의 주변을 배회한다.

성도가 존재하는 구별된 이유와 거룩한 목적을 망각하게 하고 영원한 세상이 아닌 유한한 이 세상의 것들과 우리의 육에 속한 것들에 자꾸 집착하게 만든다.

우리가 영생의 소망을 따라 영광의 후사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그다지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주제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사명과 영광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렇게 빠르게 빠르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부터 멀어져 다시 죄악으로 치우치려 하는 죄인들에게 강력하게 복음을 외치고 또 외치는 데에 있는 것이다.


8절의 말씀을 보라.

‘말씀은 신실하다 그리고 이것들에 관해서 나는 네가 확신 있게 말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믿어 왔던 자들이 선한 일들에 대해 수행하기를 조심하도록 이것들은 사람들에게 선하고 유익하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여러 것에 대하여’ 라고 했다. '여러것' 이란 무엇인가..

4절에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5절에 중생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6절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부어 주심

7절에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심


이 모든 말씀이다.

바로 복음을 의미한다. 

그 어떤 주제가 아닌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어떻게 죄인들에게 임했는지를 그 복음의 정수를 언제나 굳세게 말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굳세게 말하다’ 라는 말의 의미는 완전하게 확신하다, 강조하다, 주장하다 라는 의미이다. 즉 확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주장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 4장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없이 말며’ 라고 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그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 게으르지 말고 강력하게 충성을 다해서 수종을 들라는 의미이다.

설교는 복음을 굳세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을, 이 복음의 위대함과 아름다움과 보배로움과 그 준엄함을 그 공의와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굳세게 선포하는 것이다.


다른 말을, 다른 사상을 혹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의도 로서의 부드러운 말이 아닌, 오직 참된 진리를, 영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반드시 믿어야 하는 생명의 복음을 가감없이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고 굳게세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디도에게 다른 말이 아니라 앞에서 열거한 이 모든 진리의 참된 복음에 대해서 당당하게 굳세게 확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주장하라고 지도하고 있다.


강단에서 이렇게 타협하지 않은 참된 진리가 올바르게 굳세게 선포될 때 성도의 영혼들이 깨어나고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지를 깨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끝은 무엇이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문득 문득 깨닫고 기억하게 될 때 인생은 이 세상에서 주어진 남은 날들을 온전히 주를 위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거룩한 결의와 염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굳세게 진리를 선포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찔리고 각성하며 돌이켜 회개하지 않을 때 인생은 어떻게 되겠는가..

세상으로 세상으로 빠르게 미끄러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자기의 만족과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살고자 하는 안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성도는 언제나 자주 참된 복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임한 구속의 은총에 대해서 듣고 깨달음을 통해서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예비된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도와 성도의 삶을 아름답고 가치있게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유익되게 하는 일이라고 사도는 가르치고 있다.


설교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고 진리를 깊이 있게 다루며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 것인지를 올바르고 진지하게 다루어 줄 때, 

굳세게 진리가 선포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그 진리의 말씀 앞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져 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 라고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광을 받으시는 선한일 들을 위해 준비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다.


모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자신이 즐거워 하는 일 속에서 기쁨을 얻으며 자기의 인생이 자신의 것인듯 자가 마음데로 불신자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

그것은 올바른 성도의 삶의 가치가 아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론은 우리의 인생의 길을 제시하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하나님을 뵈올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 일은 설교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성도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길,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세워가는 일, 하나님께 행하실 모든 선한 일들을 사명들을 위해 준비시키는 일,

모두 설교자들이 올바른 복음과 진리에 대해서 피를 토 하듯이 설교할 때 성도의 영혼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존재하며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는 거룩하고 구별된 수단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목사가 뛰어야 성도야 걷고 목사가 걸으면 성도는 서고 목사가 서면 성도는 앉고 목사가 앉으면 성도는 눕고 목사가 누우면 성도는 잠을 자고 목사가 잠을 자면 성도의 영혼은 죽는 것이다.


굳세게 말하라

확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주장하라 

무엇을 복음을..

그것이 모두를 살게 하는 길임을 사도는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참된 진리를 강력하게 증거하고 진리의 사자후를 발할 때 비로서 성도는 선한 일에 힘쓰며 이 모든 주를 위한 헌신과 수고와 충성을 통해서 그들이 말할 수 없는 유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굳세게 말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여러분에게 따갑고 어떤 부분은 받아 들이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영혼이 사는 길이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잘 준비하는 길이고 여러분의 영혼에 더 없이 유익이 되는 아름다운 일이 될 것이다.


유사시 특수한 임무를 부여 받은 군인들은 평상시에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미국에 네이비 씰 같은 특수 부대들이 받는 훈련을 보라.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개혁교회의 목사와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정예 부대이다. 가장 첨병에 서는 자들이다.

그러니 그 어느 교회 보다도 강력한 말씀으로 훈련을 받고 무장을 하는 것이다.


해병들은 이런 구호를 자신들의 군복에 새긴다.

"아무나 해병이 될 것 같으면 나는 해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나 누구에게나 들려 주시는 이러한 말씀이 아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고 지켜 갈 자들에게만 이렇게 굳세게 진리가 그들의 영혼 가운떼 선포되는 것이다.


그들만이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들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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