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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57

2022.05.11 07:06

hi8544 조회 수:306

<묵상, 설교 한토막>

에스라가 율법을 강독하기 전에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들에 의해서 나무 강대상이 제작이 되었습니다. 이는 학사 에스라를 통해서 듣게 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그 마음에 사모함이 컸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그 말씀의 권위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 망대와 같은 높은 나무 강대상이 백성들에 의해서 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칼빈을 비롯한 이후 청교도들이 설교를 한 교회의 강대상은 모두 나무로 만든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가야 할 만큼 높이 설계되고 제작된 것들이었습니다.
유럽에 세워진 유서 깊은 예배당에도 높은 곳에 계단으로 올라야만 하는 강대상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강대상이 그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물론 당시에는 마이크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높은 곳에 강대상을 제작하고 예배당의 높은 천장을 통해서 구조적으로 최대한 설교자의 목소리가 잘 공명이 돼서 멀리 있는 곳까지 음성이 선명하게 전달되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강대상이 그렇게 높았던 더 중요한 영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그렇게 높이기 위해서 였습니다.

설교단의 뒤에는 두개의 창문을 만들었는데 그 창문으로 외부로부터 빛이 들어오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그 두 창문은 바로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하게 역사하던 시대에는 예배당도 이처럼 신학을 가지고 설계가 되고 건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예배당의 모습을 보십시오.
근래 지어진 대형 교회의 예배당은 강대상이 모두 회중석 아래에 무대처럼 위치해 있습니다. 회중석이 극장처럼 점점 높아지는 형태로 설계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나름 성도들을 배려한 것이지만 말씀을 선포하는 자리보다 회중석이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인간을 높이는 시대의 정신이 예배당을 짓는 데에도 반영이 된 증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설교자의 위치보다 회중의 위치가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람이 더 중요하고 사람을 더 높이고 배려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높은 곳에 위치한 강대상을 바라보는 것은 목이 아프고 불편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당에서 강대상이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그 배경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그 말씀에 복종하겠다는 모든 성도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권위가 점점 가볍게 여겨지는 오늘의 시류는 이제 교회의 예배당 구조만 놓고 보아도 쉽게 파악될 수 있습니다.

유럽의 전통적인 걔혁교회들은 여전히 강대상의 위치를 교회와 어떤 자리보다 가장 높은 곳에 배치를 하고 성찬상과 세례기를 좌우에 고정하여 교회가 어떤 신앙의 가치를 가장 귀하게 여기며 그 중심에 두고자 하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사람을 높이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만을 가장 높이는 곳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언제나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을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야 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경외하는 성도에게 요구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부흥과 각성을 허락하실 때 이렇게 준비된 하나님의 말씀의 종들을 허락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지극히 낮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겸비함을 준비시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는 부어 주시는 영적인 부흥이 일어날 때의 전조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