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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144

2022.09.13 07:47

hi8544 조회 수:656

<묵상, 설교 한토막>

왜 하나님께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하셨는지를 우리는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결국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신앙의 순수성이 무너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결혼을 하게 될 때 불신자가 신자의 영향을 받기 보다는 결국 신자가 불신자의 영향을 받게 되고 신앙 자체가 변질되거나 약화되고 소멸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어린아이들 가운데 히브리어는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방의 언어는 절반이나 하고 있었다는 것은 성경적인 가치관이 아닌 지극히 무신론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에 그들의 영혼이 깊이 오염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아버지를 통해서 여호와 경외 사상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이방의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적이고 불신앙적인 사상에 깊이 동화되고 그 영향 아래서 자녀들이 자라게 된 것입니다.
 
불신자와 신자 간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 인생관, 물질관의 좁혀질 수 없는 그 차이, 문화적 이질감의 차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 신자들 사이에서도 그 신앙의 깊이의 차이가 현저하다면 이 역시 많은 갈등과 어려움의 원인이 되기 마련인데 아예 믿음이 없는 사람과 믿음이 있는 사람의 결합은 결국 모두 신앙을 잃어 버리게 되든지 아니면 현저하게 신앙이 약화되는 쪽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 신자의 신앙이 온전하지 못하던지 아니면 참된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깊은 형제가 어떻게 믿음이 없는 자매와 결혼을 하겠습니까.. 
믿음이 없거나 혹은 그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에 결국 믿음이 없는 상대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투철한 여호와 경외심을 가졌다면 이방의 여인들과 결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믿음의 부모가 진정으로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것이라면 불신자에게 혹은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자신의 아들과 딸을 줄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타협하는 것입니다. 

이방여인과의 결혼은 정욕에 이끌린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당시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빈궁한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이방인들의 가진 사회적 경제적 배경에 편승해서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된 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과의 결혼을 통해서 그들은 속히 포로 생활의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신자의 결혼은 독실한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결혼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구별된 믿음의 가정을 세우기 위함 입니다.
두 사람이 더욱 뜻을 합쳐서 하나님을 올바로 신앙하고 혼자면 넘어질 수 있으니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을 이루고 함께 주의 몸이신 교회를 섬기는 일에 힘을 모으기 위함 입니다.
 
그러한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다.
신앙이 더 퇴보하고 더욱 예배와 교회와 멀어지게 되며 결국 신앙이 변질되던지 더 심각하면 배도가 일어나는 일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거룩한 예배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지켜 나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을 구별하여 부르셨고 하나님을 그들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계획이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에 의해서 또다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자기들을 부르신 이유와 목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그들의 생애와 삶을, 그들의 역사를 보십시오. 
전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그 거룩한 소명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우리들의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선민 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이토록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들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그 궁극의 계획을, 그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채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들의 영달과 번영과 행복 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신앙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교회의 의미는 무엇이며 주일의 의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개념은 어떻게 이해될까요..
 
하나님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계시하여 알리시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셨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제 멋대로 인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진지하게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고 주신 은혜들을 붙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살아가고자 거룩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들을 부르신 그 위대한 목적을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