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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188

2022.11.14 07:39

hi8544 조회 수:330

<묵상, 설교 한토막>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라고 했습니다.
 
‘삼갈지니’ 라고 번역된 단어의 의미는 주의하다, 전념하다, 착념하다 라는 뜻으로 들은 말씀을 부지런히 묵상하고 그 말씀에 유의하며 숙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전해져 온 율법이나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전해 들은 복음에 대해서 지극히 부주의 함으로 그 모든 말씀들에 대해서 전심전력하여 그것을 진지하게 묵상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성경을 이것을 매우 경계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고 듣고 깨닫는 것에 매우 집중하고 그것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는 일의 반복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 좋은 감동적인 교훈이나 삶에 도움이 되는 강연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러한 부주의한 태도가 결국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 가운데로 성장해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켜야 할 유일한 진리이며 성도가 살아가야 할 삶의 규칙과 중요한 신앙의 원리입니다.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가하지 않는다면, 이것에 더 우리의 지성과 마음을 쏟지 않는다면 결국 믿음의 자리를 떠나 흘러 떠내려 가게 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임을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때때로 신앙의 회의와 권태와 싫증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의심과 불안과 염려와 근심에 날마다 눌리고 그로 인해서 신앙이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 깊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즐겨 묵상하며 그 복음에 대해서 진지하고 지속적으로 우리의 영혼이 주의를 집중하며 그것을 배우고 깨닫는 일에 우리가 삼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붙잡히지 않을 때 의심과 회의와 불신앙에 붙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더 해 갈수록 더 깊은 진리의 깨달음과 은혜를 얻기 위해 매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채 우리의 마음과 관심을 세상과 우리 자신의 욕망에 내어주기 십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이 멀어지게 됨으로 신앙이 흔들리는 위기를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언제나 분주하고 피곤합니다. 진리를 우리의 영혼에 담기 보다는 세상으로부터 잡다한 것을 우리의 마음에 담아 허탄한 생각들과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운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앙모하는 것보다 더 우선순위가 되어버린 세속적인 가치들을 추구하는 마음이 진리에 대한 거룩한 관심을 짚어 삼켜 버리게 될 때, 
결국 십자가의 복음이 주는 깊은 영혼의 깊은 감동과 깨달음과 교훈과 위로를 얻지 못하게 되고 나아가 무미건조한 삶이 지속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에 대해서 삼가하는 마음을 신자가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신앙은 결국 현저히 약화되고 뒤로 물러나게 됨으로 영적인 나태함과 깊은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태어났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아이처럼 우리 또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믿음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되는 신앙의 기형적인 상태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1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목적은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기까지 성화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그냥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종교적 관성만으로 구원받는 믿음에 있어 충분함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주의하고 경계하며 깨어있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그만큼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히브리서는 이미 신자가 된 히브리인들에게 그대들이 율법과 복음을 들었다면 우리가 들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 더욱 간절히 삼가해야 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진정한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차갑게 식은 가슴으로 어떤 거룩한 동기와 목적도 없이 싫증과 권태를 견디며 마지 못해 버티기를 하는 막연하고 공허한 종교적인 의무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언제나 진리를 통해서 깨달은 바를 항상 마음에 삼가하며 그것에 주의하고 집중하며 진지하게 그 진리를 깨닫고 경험해 나아가기 위해 영적인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진리로 이끄는 흡입력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참된 진리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목마름과 허기를 느낍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깨달으며 영혼의 양식으로 삼는 일에 전력하지 않고는 결코 구원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결국 그 길에서 미끄러지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