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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75 (요 6:15)

2023.03.27 09:24

hi 조회 수:731

<묵상, 설교 한토막>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주님께서는 이 기적의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칭송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흥분하고 들떠 있던 제자들을 다음 순간 풍랑이는 밤 바다 위로 이끄셔서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드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이 속히 정신을 차리고 예수의 제자 된 것이 이 땅에서의 영광과 명예를 얻기 위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다시금 환기시키셨습니다.
 
이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26~2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예수님 당시에 예수를 좇던 수많은 무리들의 정체를 주님께서는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좇는 이유에 관해서 주께서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메시야의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은 그들의 육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빵을 통해서 육신의 배고픔의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을 좇을 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들처럼 육신의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을 얻게 하는 영원한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실 것인데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메시야됨을 인정하시는 도장을 받았다고 자신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자신들의 죄와 영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메시야로 믿고 주님을 좇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특별한 존재로, 혹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줄 정치적인 메시야로 여긴 채 주님을 추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가 무엇 때문에 이 땅에 오셨고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궁극의 그 은혜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누구든 여전히 예수 때문에 이 땅에서 행복과 평안과 번영을 누리는 일에만 몰두하고 집착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주님께서 직접 밝히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가장 그릇된 오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주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는 것을 신자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 자신들의 어떤 결핍이나 결손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니 진정한 신자가 되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 예수를 믿었는데도 내 인생이 왜 이 지경인지에 대해서 불평과 원망을 갖게 되는 것이고 이 문제가 결국 풀리지 않음으로 인해서 신앙을 버리고 배도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다른 신앙의 그릇된 동기는 자존심이나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세상에서는 자기를 알아 주지 않음에 대한 보상심리로 교회 안에서 자기의 열심을 통해서 자기를 알아 주기를 바라고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종교생활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빗나간 신앙의 동기를 가진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풍성하신 은혜가 채워지기 만무하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게 되는 일 또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그것을 보상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종교생활을 시작했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신자는 나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분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 주신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로 정확히 알고 믿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받고 누리고 행복해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 신앙의 본질임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치유와 그 필요를 공급하심은 인간의 어리석은 관심과 주위를 그리스도게로 돌리도록 하는 방편일 뿐, 그리스도께 나아와야 하는 궁극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오늘도 예수를 믿는 목적이 여전히 물질적인 형통과 마음의 평안과 자신의 명예와 사람들의 인정을 위한 것일 뿐인 현세 기복적이며 자기사랑에 사로잡힌 참된 신앙에서 벗어난 종교인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