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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46

2022.04.26 07:05

hi8544 조회 수:421

<묵상, 설교 한토막>

주님께서는 또 주님의 마음이 겸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밝히신 주님의 마음, 그 성품은 다음으로 겸손하심 입니다.
‘겸손’의 원어적인 본래의 의미는 ‘삶의 빈궁함이나 열악함’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사회적으로 외면 당하는 소외 계층들, 사람들에게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신을 겸손하다고 표현하신 의미는 다름이 아니라 주님은 그렇게 다가오기 어려운 권위나 영광이나 화려함을 가지신 분이 결코 아니라 자신에게 누구나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그런 분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2절은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의 외모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화폭에 그려진 모습과 달리 출중한 외모를 가지신 분이 결코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결코 범접할 수 없는 매우 까다로운 분이 결코 아니라 누구나가 어렵지 않게 다가올 수 있는, 주님은 그것을 기꺼이 허용하시고 기뻐하시고 바로 그 목적 때문에 이 땅에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신 표현입니다.

유대주의 종교 지도자들의 그 율법에 대한 강요와 억압 아래서 그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태도에 멍들어 있었던 많은 유대인들은 이렇게 주님 자신의 마음을 소개하시면서 그들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매우 이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다른 종교적인 지도자들의 모습과 메시야의 모습은 사뭇 달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께서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인품을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너희와 다를 바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교훈하셨습니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라고 이르셨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라는 의미는 이제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화를 위해 살아가야 할 구별된 삶의 그 여정을 기꺼이 감당하면서 주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뒤따를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도의 삶을, 주를 뒤따라가며 구원 받은 신자의 삶을 살아가되 그 삶의 핵심은 바로 주님에게 배우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수고와 슬픔 뿐인 인생이지만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주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에게 배우며 인내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쉬 화를 내고 자기를 고집하며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참지 못하고 서로를 반목하고 멸시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주의 그 온유하심을 본받아 기다려 주고 인내하며 관용으로 대하는 그런 마음을 우리에게도 부어 주시기를 신자는 기도해야 합니다.

부드러운 마음과 눈빛으로 우리를 언제나 기다려 주시는 그 마음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다가가기 어려운 도도하며 오만한 까다로운 인격이 아니라 누구든 기꺼이 다가갈 수 있을 만큼 온유하시고 겸손하심을 우리도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길, 성화의 길로 행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주님의 멍에를 짊어지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께서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신 그 삶을, 그 신앙의 모든 길을 배워가고 있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만 차별적으로 온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임에도 어떤 지체를 향해서 그를 외면하고 등을 돌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한 교회안에서 한 하나님을 신앙 하면서도 서로 인사 조차 나누지 않는 분이 있다면, 우리가 과연 주님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 말할 수 있을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