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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50 (히 5:11-14)

2023.02.14 07:43

hi 조회 수:567

<묵상, 설교 한토막>


‘때가 오래므로’ 라는 의미는 이 글을 읽는 수신자들인 히브리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복음이 최초로 전파된 곳이고 최초의 기독교 교회들이 세워진 곳이며 그들 중에 나이가 많은 이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시는 것을 직접 들은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 대해 정통한 자들이 적지 않았던 히브리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 더 확장된 지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이어지는 시대에 그들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조건 속에서 신앙의 연륜이 그만큼이나 오래 되었음에도, 그들은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성경에 정통한 교사가 되어 있을 법한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적인 요소들, 즉 구원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들 조차도 다시 누군가에게 배워야 될 만큼 여전히 신앙의 초보적인 수준 밖에 이르지 않았음을 지적 받고 있었습니다.
비유로 이르기를 아직도 젖을 먹고 있어서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수준 밖에 되지 못했다고 히브리서의 기자는 한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성장해 나아가고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그 오랜 시간 동안 무엇을 들었고 배웠으며 그 진리가 그의 영혼에 어떤 깊은 영향을 주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서 그가 성경과 교리의 체계적이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결국 회심을 경험하게 되고 깊이 십자가를 체험하게 됨으로 고백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의 그 유무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만났고 이후 성경의 진리를 깨달아 가며 교리적인 지식이 쌓여 감으로 인해서 그가 받은 구원의 그 감격과 기쁨을 얼마나 충만히 누리고 있으며 그 은혜를 현재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성숙한 신앙의 길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그 신앙의 중심이 말씀이 아닌 단지 기독교적인 친숙한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그래서 찬양도 부르고 때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기는 했어도 진리에 대해서 그 깊이가 자라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그 깊은 반드시 깨달아야 할 단단한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이신칭의의 의미도 예정의 교리 조차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개념 같은 더 고차원적인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 그것을 올바로 알고 있지 않다면, 그 믿음은 초보적인 어린아이의 그것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됐지, 신학생도 아니고 목사가 될 것도 아닌데 그렇게 어려운 교리를 배워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정을 모르면 어떻고 그리스도의 의가 주입이냐 전가냐 그게 무엇이 그리 중요한 것이며 삼위일체를 어떻게 우리가 이해하고 믿어야 할지, 유효적인 부르심과 보편적인 부르심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양성과 삼중직을 알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창세기, 로마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십계명을 정확히 외우거나 예수님의 열두제자, 바로에게 내린 열가지 재앙 등을 정확이 암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많은 수가 아닙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교회를 다녔지만 성경에 대한 교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시험을 본다면 과연 성경에 대한 우리의 성적표는 몇 점이 되겠습니까?
 
히브리서의 말씀에 따르면 바로 그렇게 오래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성경의 깊은 지식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관심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자들이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의 무게가 여전히 지극히 가볍기 그지 없는 신앙, 그것이 바로 어린아이 같은 믿음입니다.
 
성숙한 믿음은 성경을 향해서 멈추지 않는 열심으로 기록된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이해하며 적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의 언어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언제나 자기를 희생하고 섬기며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고 감격이 되는 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가시 같은 까다로운 사람일지라도 그를 품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따뜻한 손을 내 밀어 줍니다.
그가 성숙한 그리스도 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