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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53 (히 5:11-14)

2023.02.17 07:47

hi 조회 수:560

<묵상, 설교 한토막>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지각은 정신 혹은 감각기관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곧 진리를 분별하는 영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진리를 옳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인생을 지나가는 동안 훈련해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지각을 사용한다는 의미는 훈련과 연습의 모든 과정이 수반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신자의 삶은 행복과 평안의 시간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혹독한 훈련과 부단한 연습의 시간들입니다. 그렇게 훈련과 연단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선악을 분변하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귀가 통치하는 이 세상은 시간이 갈수록 이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법과 도덕과 윤리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절대 진리가 존재할 때 절대적인 법이, 사회를 지탱하는 정의와 도덕이,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는 윤리가 존재하는 법인데 절대 진리를 멸시하는 세상은 더이상 이러한 가치들을 지켜낼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혼란과 혼돈과 무질서입니다. 세상에 악은 이렇게 창궐하는데 죄의 존재는 부인합니다.
죄를 죄로 악을 악으로 인정하지 않는 인간, 자신이 죄인인 것을 부정하는 이 악한 세상에서 여러분은 어떤 희망을 보십니까..
부끄러움을 상실한 양심에 화인 맞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만들어가는 이 세상의 그 끝은 무엇이라고 여기십니까..
 
진리가 존재하고 그 진리 앞에서 인간이 부단히 그 무지와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 겸손해질 때 그나마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진리를 부정해 버리고 인간 자신이 진리라고 떠들고 믿는 시대, 그래서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가 이토록 불분명하고 불명확해진 시대는 이제 점점 멸망의 시간을 향해 더욱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이라는 그 모든 희비애락의 시간을 지나가면서 결국 궁극의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서 참되고 거짓됨의 그 실체를 진리 안에서 발견해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참과 거짓, 선과 악, 의와 불의에 대해서 그것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고 그것을 알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행복입니다. 물질입니다. 오직 내가 즐거워 하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 궁극의 선이고 악인지, 무엇이 진리이고 진리가 아닌지, 무엇이 진정한 믿음이고 믿음이 아닌지 결국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그것을 분별하는 것이 그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인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별할 수 없다면 그의 삶과 그의 영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갈 것이며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많은 신자들을 봅니다.
인간이 연약하여 어찌할 수 없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러한 정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가장 명백한 이유는 그는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과 지혜를 아직도 예수 안에서, 진리 안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것을 위해 치열한 연단을 아직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성경이 말씀하는 이유는 결국 성경의 진리를 통해서 영혼이 깊은 깨달음을 얻어 절대 선과 절대 악에 대한 기준이 한 영혼 안에서 명확해지지 않으면 그는 결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는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진리를 지워 버린 채 선과 악의 기준점을 모호하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만 지워 버리면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을 올려 놓으면 이제 모든 인간들을 마귀의 손 아래 둘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통합시키고 모든 가치 판단의 척도는 더 이상 인간을 스스로 피곤하게 하는 이성도 아니고 단지 인간의 마음, 느낌이라고 속삭입니다.
 
‘네가 하고 싶은 데로 해 그것이 답이야, 네 인생이야, 네 마음대로 하면 돼’
‘법, 윤리, 도덕, 개나 주라고 해 네가 하고 싶은 데로 네 마음대로 네가 즐거운 인생을 살아’
‘선악과를 따 먹어, 영원히 살 수 있어 행복해 질 수 있어,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네 인생만 피곤해 질 뿐이야..’
 
세상은 참으로 모순됩니다. 남자를 더 이상 남자라 하지 않고 여자를 여자라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께서 부여한 천부적 절대 기준과 그 질서들은 모두 부정하고 파괴하면서 인간은 모두 평등해야 하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궤변을 늘어 놓습니다.
진리를 버린 인간들이 무슨 수로 평등해 지고 정의로워 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 숭고한 가치를 논할 자격이 타락한 인간들에게 있습니까..
 
진리가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책임과 의무는 모두 지워 버리면서 인간을 위해 인간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또다시 인간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는 사악하고 참람한 짓들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이 세상은 멸망의 길, 붕괴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절대 진리, 절대 기준은 모두 파괴하면서 인간들에게 인간이 지키기를 원하는 어떤 시대적 기준을 말하고 강요할 때 그것을 지킬 능력이 인간에 존재할까요..
결국 세상은 공멸의 길로, 대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가 노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 안에서 결국 스스로 답을 찾을 것이라는 것이 바로 인간 중심의 진보적인 사고입니다.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다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놔 두면 다 알아서 행복을 찾아서 살아간다고 믿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무신론적이고 진화론적인 인본주의에 입각한 사고입니다.
그런 인간들에게 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필요하고 성경이 말씀하는 절대적 진리가 왜 중요하겠습니까..
모두 하찮은 비웃음거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결코 인간에게 답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럴 능력이 있다면 왜 이 세상에 전쟁과 사회적인 갈등이 끊이지 않겠습니까.. 왜 교도소는 죄인들로 넘쳐나는 것입니까..
왜 범죄는 쉬지 않고 일어나는 것입니까..
 
답은 오직 진리 안에 있고 그 진리 속에서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무엇의 의이며 불의인지, 무엇이 합법이고 불법인지를 깨달아 배우고 아는 것만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올바로 존재하는 방식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고 깨닫게 되어 결국 그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람들, 성도들만 마침내 진리를 발견하게 되고 모든 삶을 통해서 결국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로 세워지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궁극에는 이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들을 파멸로 몰아넣으려는 사탄의 계략입니다.
모든것을 뒤 섞어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게 해야 인간은 그 무지의 어두움 속에서 더 마음껏 악을 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더 어두워져야, 인간의 지각이 더 혼란 속에 빠져 들어가야 더 많은 죄를 범하고 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채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거듭난 자의 영혼과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언제나 칼날처럼 죄의식이 서 있습니다.
무엇이 죄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매우 명민한 영혼의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한 숱한 연단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무지할 때 벌어진 그 많은 죄악들로 인해 고통을 받고 그 죄의 혹독한 대가들을 인생 속에서 지불해 왔기에 이제는 하나님을 더 깊이 의식하며 죄를 죄로 바라볼 수 있는 정확한 분별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해 더 눈이 밝아지면 더 많은 죄가 보이지만 진리의 눈이 여전히 어두우면 무지 속에 수많은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임을, 그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악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죄를 범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연단하기 원하십니다.
결국 그 연단으로 지각이 생겨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분별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을 지나가면서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가 어떤 자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지를 깨달아 그렇게 되기를 힘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오늘도 연단을 받으며 진리와 비진리가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혼란의 시대에 날선 검과 같은 날카로운 분별력으로 선악을 분별하여 오직 진리의 편에 서는 장성한 자입니까..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 되어야 진리를 위해서 어떤 대가도 지불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진리를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하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하는지, 그냥 교회를 다니기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인생을 지나가면서 여러 연단을 통해서 왜 진리를 선악을 옳게 분별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신자로 살아가는 것은 그냥 즐겁고 평안하며 무탈하고 행복하게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 결코 전부가 아닙니다.
장성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 속에서 선악을 분변하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로 한 시대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무엇인지, 진리와 비진리가 무엇인지, 의와 불의가 무엇인지를 보려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삶을 볼 때 그것을 깨닫게 되는, 그리스도인의로서의 빛과 소금의 가치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이것이 바로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