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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리뷰 18 (다니엘 3장 24-30절)

2024.02.06 08:41

hc 조회 수:110


느부갓네살은 극렬히 타오르는 용광로의 입구까지 다가가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러냈습니다. 그가 이 세 사람을 어떻게 호칭했는지를 보십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그의 꿈을 해몽했을 때도 그는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라고 하나님을 높였던 적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또다시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이 믿을 수 없는 일 앞에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다시 한번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높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세 사람을 풀무불에서 나오도록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신하들이 이 세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의 몸은 불에 상한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털 하나도 그슬리지 않았고 그들이 입고 있었던 옷도 전혀 그을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불에 탄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께는 우리의 머리털 하나라도 상치 않도록 우리를 강력하고 완전하고 완벽하게 보호하고 지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믿음은 막연한 것이 아닌, 바로 이같이 오늘도 자기 백성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능히 증명될 수 없는 일, 그러나 그 일이 마침내 일어 나고야 말았을 때 신자든 불신자든 이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신자는 우리가 믿는 이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으로 누구나 갈 수 없는 길을 선택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어떤 위기 가운데서라도 살리고자 하심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그 가운데서 건짐을 받고 살아나게 될 것이고 우리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담대하게 우리의 최후를 맞이함으로 하나님을 불신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높임을 받아야 함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능히 잠시 후에 뵈올 주님을, 그 찬란히 빛나는 영광을 바라고 소망하며 기쁨으로 담대하게 결연히 우리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교회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믿음에 대한 증거이며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구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궁극의 뜻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여러분은 우리의 신앙이 어디 까지를 목표로 해야 할지를 가늠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칼빈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던 또 한 명의 개혁가, 스위스의 베른과 로잔과 제네바를 오가며 파렐과 칼빈과 함께 교회 개혁을 위해 모든 열정을 바쳤던피에르 비레는 카톨릭의 사제에 의해 칼을 맞아야 했고 역시 카톨릭이 매수한 여인에 의해서 독약이 든 시금치 스프를 먹고 거의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과 그리고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야만 하는 아픔을 그는 겪어야 했습니다. 건강의 악화로 남부 프랑스의 따뜻한 지역에서 요양을 하며 사역을 했어야 할 만큼 그의 건강 상태는 좋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가 태동되는 시기에 엄청난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출중한 개혁가들이며 그의 벗들이었던 파렐과 칼빈을 먼저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보내고 마지막까지 남아 개혁의 과업을 완수했고 프랑스의 종교 전쟁 중에 로마 카톨릭의 군대에 체포되어 투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위대한 개혁가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전혀 아름답거나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그토록 힘겨운 삶이었지만 그의 삶이 그러했기에 그는 더욱 확고하게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고 소망하며 더욱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진리를 초인적인 힘으로 전하고 카톨릭과 맞서 싸우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어찌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소망할 수 있고 이 땅에서 평안과 안위만을 기대하면서 어떻게, 무슨 수로 주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삶에 크고 작은 고난과 연단이, 시련과 고통이 없이 우리가 어떻게 더욱 주를 견고하게 붙잡고 의지하며 흔들림 없이 좁은 길을 가며 우리의 믿음이 비약적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은혜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평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오늘도 이러한 말씀을 들으면서 더욱 우리의 믿음이 주께 견고하게 붙들려 있는 믿음이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말씀과 기도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