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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3

2022.03.16 07:42

hi8544 조회 수:331

<묵상, 설교 한토막>

느헤미야는 유다의 총독으로서 그들의 지도자로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장들과 귀족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죄 몫은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동포들을 상대로 부채에 대한 강제 이자 징수를, 고리대금업을 한 악행 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법을 어긴 명백한 죄였습니다.
가진 자들의 탐욕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이었습니다.

부자들의 가장 큰 죄는 그 재물이 모두 자기의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셔서 그에게 많은 물질을 맡기셨고 그 물질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많은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도록 은사적으로 주신 것인데, 그것을 사유화 하여 자기의 것으로 여긴 것이 가장 큰 죄가 되었던 것입니다.

더 가진 것은 덜 가진 자들과 나누라고 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특별히 더 부요하게 하신 모든 것은 타인을 위해서 그것을 선용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권력이나 물질을 사유화 하는 자, 그 권력과 그 물질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두려운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데 자기의 것으로 착각한 그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탐욕을 가지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결단코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형제에게서 이식을 취하거나 혹은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는 것을 분명히 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인간의 사악한 탐욕이 발동하여 악을 행하고 있었으니 이로 인한 고통과 절규의 소리가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기에 언제나 사회에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을 억울하게 하는 일들을 그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은 멈추지 않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불꽃 같으신 눈으로 모두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선악 간에 모든 것을 심판하십니다.

게으른 자를 먹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고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꾸짖어 성실하게 만들고 땀을 흘리며 일을 하게 해서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지도하고 계몽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만한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 유대 사회의 과부와 고아로 대표되는 이러한 자들에 대해서는 마땅히 그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살아갈 힘을 보태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을 오랜 포로생활에서 귀환 시키시고 다시 터전을 잡게 하시며 나아가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해서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셨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특정 계급의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서 심각하게 부패와 타락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어 깨닫지 못하는 짐승 과도 같은 자들입니다.
부패와 타락을 보았으면 그것을 피하고 올바른 길을 가야하지만 기어이 또다시 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부를 무기 삼아 악하고 어리석은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세상은 결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음 번에는 또 누가 악을 저지를 차례 인지, 그 대상만 계속해서 바뀔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