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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150

2022.09.21 07:09

hi8544 조회 수:370

<묵상, 설교 한토막>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은 인간 자신이 바로 하나님과 동알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판단과 사고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닌 인간 자신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버린 인간은 그 때부터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자기의 인생을 자기의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타락한 지정의의 주인으로서 이제는 자기의 인생을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도 양심과 도덕, 윤리는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인들 가운데서는 윤리와 도덕과 정의의 측면에서 볼 때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만족에 대한 자아의 욕구가 강하며 자존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제어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인한 자기 안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의 치열한 노력으로, 이러한 자신의 신념으로 자기자신을 정의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 정도면 다른 누구보다도 대단히 나은 삶을 살아온 것이라고 자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추어진 죄와 드러나지 않은 모든 악을 숨긴 채로 마치 죄인이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자신이 신봉하는 신념과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자신의 어두움을 덮으려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겉 모습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판단 받을 수 있다고 믿을 때 우리는 더욱 우리의 드러나는 삶과 겉 모습에 신경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그의 마음, 그의 영혼과 그 중심입니다.
그 부분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지 않고는 결코 변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허물과 죄가 들통이 나거나 자기의 죄를 죄라고 전혀 인정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죄라고 정죄하는 그 주체를 부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낙인 찍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그 법을 그렇게 모두 부정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비웃으며 멸시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가인이 자기 자신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4장 16~17절에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께 쫓겨난, 하나님을 버린 가인은 이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성을 쌓았습니다.
타락한 가인은 본능적으로 이제 자기를 지켜줄 존재가 사라져 버렸고 자기를 지킬 존재는 오직 자신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최초로 지은 건축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성 이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이렇게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스스로 성을 쌓아 자신들을 지키고 방어하는 일들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나안의 이방인들도 당시 난공불락의 강력한 여리고 성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높이 쌓아 올린 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정하는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마음에 높이 쌓아 올려진 바로 불신의 성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연인은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과 영혼의 성을 쌓은 자들입니다.
인간을, 나를, 나의 전 존재와 나의 인생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마음에 견고한 성을 쌓고 그 하나님을 대적하고 멸시하며 그 말씀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이를 거부하는 철저한 방어벽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그 마음에 세워진 견고한 벽과 성은 사람의 노력으로 결코 허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인들은 그 벽을 그 성을 허물고자 하는 의지가 조금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오늘의 나를 지탱해 주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까지 나를 붙들고 살아오도록 만든 그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스스로 지켜 내면서 내 인생에 내 자신이 주체가 되어 내가 꿈꾸는 행복을 위해 그 완전한 만족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오게 만든 그 원동력이 바로 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켜서 영혼에 높은 성을 쌓아 그 자신을 그 안에 결국 가두어 버린 존재입니다.
그 성 안과 밖을 철저하게 분리시킨 채로 그 성 안의 안전을 위해서 성 밖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외면하며 나를 허무는 모든 존재들과 격렬히 싸우고 부딪히며 그 성안에 있는 자신을 지키고자 살아가는 존재들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스스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렇게 자기를 고립시키고도, 높이 성을 쌓아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지키고자 노력해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을 쌓았지만 그 성안에 갇혀버린 존재라고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높은 자존심과 자기 사랑의 벽 안에 갇혀서 오늘도 행복의 길을 찾고 있지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어디서도 그 해답은 찾지 못할 뿐입니다.
 
거룩하며 진정으로 순결한 정신적, 영적인 근원적 가치를 얻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타락한 인간의 관심과 마음은 물질적인 것과 그리고 쾌락적 감각적인 것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것에 탐닉하는 탐욕을 갖게 되든지 아니면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위안과 즐거움을 얻으려 하는 쪽으로 몰입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바로 이러한 타락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채워주고자 하는 모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거리들에 마음을 빼앗긴 채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조금 더 나아가면 명예와 권력과 사람들이 알아주는 인기에 대한 욕망까지 추가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으로 만족하기 전까지는 무엇으로도 만족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참된 만족, 영혼의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은 반드시 거듭나야만 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