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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153

2022.09.26 07:12

hi8544 조회 수:319

<묵상, 설교 한토막>

많은 사람들이 구도의 자리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결국 사탄 마귀의 훼방과 방해 때문인데 이는 곧 고난과 시련을 통한 환경과 상황이라는 외부적인 어려움의 문제들과 그리고 유혹과 의심과 회의, 낙심과 같은 내면적인 문제 때문인 경우들이 다반사입니다.
 
중생하지 않은, 아직 회심을 경험하지 않은 과정속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좋은 땅이 아닌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와 같은 영혼의 상태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도 그 영혼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과 중생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돌이키며 회개하는 마음과 양심을 가진 사람과 진리를 올바로 듣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며 자신이 지금 행하고 있는 것이 죄와 불순종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돌같이 굳은 마음과 양심을 가진자로 구분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반드시 택하신 백성들을 믿음의 자리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자리로 그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무엇인가를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준비해야 구원의 은혜가 임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준비 여부나 노력 여부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감격과 회심의 기쁨을 맛본 사람들에게는 예외 없이 그들이 경험한 바가 있었고 그렇게 되기 위한 마음과 의지의 움직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이기에, 우리는 이제 회심의 전적인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역사의 결과물이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그 자리로 인도하실 때 우리의 마음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우리의 심적, 의지적, 정서적 변화에 대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분명하지만 그 일들이 우리의 영혼 가운데서 일어나게 될 때 우리에게 어떤 반응들이 나타나며, 혹은 나타나야 하는지를 생각해 봄으로서 아직 구원의 확신을 갖거나 회심의 생애적인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을지라도 그것을 향해서 계속해서 나아가야 만 하는 확고한 구도의 태도와 자세를 여러분들이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아직 회심하지 않은 그대에게’ 두번째로 은혜를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와 그 은혜를 열망함은 곧 예배와 그리고 기본적인 교리를 배우고 익히는 노력으로 우리에게서 나타나야 함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이 없다’ 혹은 ‘믿음이 약하다’ 라는 말을 분석해 보면 진리에 대한 들음, 즉 영혼의 선명한 깨달음이 그 영혼에 깊이 영향을 미침으로 영혼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바가 없다는 것과 그 깨달음이 영혼에 깊이 새겨져서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이 찾아오는 경로에 대해서 여러가지 조언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단연 핵심은 믿음은 진리를, 복음을 잘 듣는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고 로마서 10장 17절은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을 신앙하게 되기까지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이 듣고자 하는 진지한 마음의 태도와 집중된 자세와 성실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에게는 언제나 강의의 내용을 집중해서 듣는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수학의 능력은 집중해서 듣는 능력입니다. 강의의 내용을 똑바로 듣지 못하거나 그것을 이해하고 깨닫지 못하면 당연히 지식을 얻을 수 없고 그런 일들이 지속될 때 수학 능력 역시 현저하게 낮아질 수 밖에 없고 학업의 성취도는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듣는 기능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독서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집중에서 듣고 마음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이 진리를 깨닫는 일에 이렇게 중요하지만 미디어가 발달된 이 시대에는 청각적인 능력보다 시각적인 감각 능력이 더 발달되기 마련입니다.
그 이유는 모든 정보가 듣는 것이 아닌 보는 것에 상당 부분 더 의존되고 수많은 정보들이 시각화 되어 전달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십시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을 거의 듣지 못합니다 부산하고 부주의 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도 동영상 화면을 눈 앞에 보여주기 시작하면 급격히 그것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영혼이 길들여 질 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주의해서 진리의 말씀을 경청해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매우 논리적이고 깊은 의미의 내용들을 오랜 시간 집중해서 듣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버거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설교가 짧으면 짧을 수록 환영을 받는 시대입니다. 밤을 세워 드라마나 영화는 볼 수 있어도 한시간을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진리를 잘 들으며 그것을 지성적으로 이해하고 마음에 그것을 새겨 사유와 묵상의 재료로 삼는 것은 진리를 접하며 그 진리가 담고 있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수천년 동안 이 들음을 통해서 영혼에 전달 되어졌고 각인되었으며 이 들음을 통해서 영적인 놀라운 각성과 회심의 은혜를, 마음에 중대한 생애적인 변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오랜 시간을 교회를 다녔다 할지라도 진리를 들음에 있어 현저히 부주의하여 진리를 들음으로서 거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거나 진리를 듣고 깨달음의 빈도가 빈약했다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이 생성되고 그 믿음이 배양되는 일은 심히 어려운 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에게는 직장과 학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을 수 있는 교회가 그의 삶에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더 벌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는 있어도 그의 영혼이 주를 만나기는 심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우리의 영혼에 가장 우선순위가 되는지를 놓쳐 버릴 때 말입니다.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올바른 진리를 경청하여 잘 듣는 것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얼마나 더 깊이 그리고 더 자주 폭넓게 진리를 듣고 그 지식을 쌓게 되었는 가의 문제가 결국 믿음이 한 영혼에 주입되는 도구로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미 믿음을 갖게 된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결국 이 진리를 들음에 있어서 얼마나 깊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영혼에 누적 되었는 가의 여부에 따라서 결국 그 신앙의 성숙의 정도와 성화가 결정되며 성령으로 충만한 거룩한 삶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임을 올바로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회심하지 않은 그대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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