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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182

2022.11.04 08:26

hi8544 조회 수:1108

<묵상, 설교 한토막>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의 절대권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성경에 기반한 교리와 삶에 대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모든 규범들을 오직 성경에서 얻을 수 있음을 확신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오직 성경이면 충분하다는 그 믿음을 가지고 진리전쟁을 수행해 나아갔던 전사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심리학이 아닙니다. 리더십을 가르치거나 회사의 경영과 조직에 도움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정치나 교육의 관점에서 성경을 차용하거나 인간의 어리석은 이념과 철학의 시점에서 성경의 진리를 합리화 할 수 있는 그런 가치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물론 모든 지식을 포괄하며 인간의 모든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제와 관념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책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세상의 일반 지식을 말씀하는 책이 아닙니다.그것은 세상의 일반 학문의 영역에서, 자연 계시의 영역에서 탐구하고 이해해야 할 영역입니다.
성경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 태양계를 비롯한 우주의 구성 요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학의 영역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 그리고 사랑과 긍휼, 인간의 타락과 죄와 구원의 길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통한 위대한 약속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죄의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라고 이야기 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세상의 지식으로는 결코 십자가의 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접근할 수 조차 없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율법 아래서의 죄의 두려움, 죄인과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속의 필요성과 영원한 구원의 길 등을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행복의 요소, 스트레스를 줄이는 법,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원만한 부부간의 대화법,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키우는 법과 무관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선호하는, 관심있는 분야를 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지 않습니다.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여러 사람들이 흥미로워 하는 것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세련된 편의를 제공해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정통 교리를 공부하고 배우는 일이 심지어 교회 안에서 조차도 기피되고 있습니다.
현실적이고 현세적이며 물질적이고 인간을 위로하고 종교적 위안을 제공하는 것에만 그 초점이 맞추어진 메시지로 홍수를 이룹니다.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의 의식을 보십시오. 선명한 죄의식을 갖기 보다는 자유롭고 행복하고 모든 것을 누리고 즐기고 위로 받고 마음의 평안을 구가하는 것에만 온통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어디서나 사람을 위한, 사람의 말들 만이 무성한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으면 거부 당하고 거절 당하며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영생 얻는 복음이, 십자가의 그 위대성이 선명하게 전해여야 하는 곳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복음이 점점 희미해 지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그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을 무척 사랑하시고 어떤 일을 해도 다 용서하시고 그저 당신이 이 땅에서 행복하고 형통하고 즐겁게 살기만을 바란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것은 결코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한없이 가벼움 내용들로 일관하며 인간을 위로하고 인간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이야기들로 설교들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 열심을 내기 보다는, 그래서 우리가 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치기 보다는 인간 자신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무엇을 더 도와 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열렬히 논할 뿐입니다.

성경으로, 오직 예수로 만족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믿는 이 복음의 가치를 위해서, 그 영원한 약속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성도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자기 부인’ 의 의미는 모든 인간을 위하려는 일체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인간에 대한 자신에 대한 사랑에 대한 포기를 의미합니다.
복음은 바로 이것을 말씀합니다.
천하를 다 버리고서 라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 십자가를 선택하고 자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 믿음이 바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복음을 그대로 올바로 믿는 믿음입니다.
 
아모스 9장 11,12절은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무너진 것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그 말씀이 자살을 결심한 자의 마음을 돌이키며 그 말씀이 절망에서 일어설 힘을 주시며 그 말씀이 모든 잘못과 허물을 덮고 용서할 힘을 주시며 그 말씀이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 말씀이 모두가 등을 돌린 외로운 영혼, 모두가 포기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병든 영혼을 일으키고 잠자는 교회를 깨우며 깊이 병들어 가는 사회와 한 시대를 깨우는 능력이 됨을 기억하십시오.
 
시편 147편 15~19절을 보십시오.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 말씀을 보내서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그 권능으로 말미암은 것을 시인은 고백합니다.
그 말씀이 온 우주를 통치하며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야곱에게,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보이시고 그 의미를 깨닫게 하사 그들을 생명의 길로, 영생의 길로, 진정한 의미가 있는 삶으로 인도하시며 그 모든 우리가 지켜 살아가야 할 율례와 규례를 보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진리의 의미들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의미 있게 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성도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 같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 말씀을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 말씀 안에서 인생이 모든 답을 얻으며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발견하며 우리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들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버리면, 진리와 멀어지면 그 영혼은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교회 안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참된 진리 안에 머물며 그 말씀과 교통하고 교제하지 않으면 그 신앙은 기형적으로 자라게 되고 결국은 진리의 도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여 다시 성경의 진리로 돌아오게 하신 지 505년의 역사가 흘렀습니다.
교회는 개혁되었습니까..
여전히 개혁된 교회는 오직 성경만이 절대 기준으로 신앙의 중심에 우뚝 세워져 되어 있습니까..
개혁된 교회를 다니는 성도 여러분의 삶의 그 중심은 내가 아닌 그리스도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오직 성경으로가 아니라 오직 내 마음대로, 내 판단대로 내 형편을 따라서 적당히 그렇게 성경에서 빗나간 길을 걸으면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505년전 교회의 개혁의 그 정신이 오늘까지 우리 안에 살아있으며 그것으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더욱 영광스럽게 섬기고 있는 것인지를, 오늘 우리는 다시 이러한 사유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신앙의 현 주소를 되돌아 보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선조들이 피로서 지켜낸 그 신앙의 고백을 우리도 이 시대에 이어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사랑하며 그 말씀에 절대적 지배를 받으며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악한 시대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신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