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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36 (히 4:6-11)

2023.01.20 08:41

hi 조회 수:373

<묵상, 설교 한토막>


히브리서는 히브리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배도는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길이며 이 모든 핍박과 회유 속에서 고개를 들어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 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안식을 얻었으나 궁극의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을 이 땅에서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인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구주로 믿었을 때 이미 우리는 참된 안식을 얻은 자들이고 그 안식 안으로 들어간 자들입니다.
 
우리가 주를 간절히 의지하며 성령의 위로와 평강을 구할 때 이 땅에서 어떤 어려움과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적 안식과 평강을 맛볼 수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정한 안식에 들어간 자들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창조 사역을 이제 멈추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일을 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자는 그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의 안식을 주시는 이 날을, 이 거룩한 주일을 하나님 안에서 지체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 안에서 쉴 수 있어야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에 진정한 안식을 얻게 된 자가 아니면 주일에 우리에게 주시는 이 안식을 결코 누리지 못합니다.
그는 여전히 세상에서 일을 할 것이고 주일에도 여전히 세속의 즐거움을 추구할 것이며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세상에서 행하며 이 날을 보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7일에 모든 창조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안식하심을 따라 이 거룩한 날을 자신의 영혼이 천국의 안식을 경험하는 날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진정으로 자기 일을 쉴 수 있는 그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모든 일을 멈추고 이 날을 주님 안에서 믿음의 지체들과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를 이루어 하늘의 안식과 위로를 얻으며 이 날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영원히 쉬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날이 오기 전 이 땅에서의 우리 모든 일들을 멈추고 영혼의 안식을 얻는 날을 연습하면서 마침내 궁극의 영원한 안식을 바라고 소망하는 마음을 더욱 배양해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의 깨달음과 은혜 안에서 육체를 죽이고 우리의 욕망을 성령을 통해서 제어함으로 우리의 영혼은 더욱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하는 안식과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이 자기의 일을 쉬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참된 영혼의 안식을 추구하는 신자들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삶이 이토록 고달픈 지 아십니까.. 왜 우리는 이 땅에서 서러움을 당하는 일들을 겪게 됩니까..
이 세상에서는,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서는 결코 안식이 없음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의 삶이 너무도 평안하고 행복하고 매일이 나에게 안식과 같은 삶이라면 누가 영원한 삶을 소망하겠습니까..
수고와 슬픔 뿐인 삶이기에 그리고 그 속에서 잠시 맛보게 하는 안식이기에 우리는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고 싶은 식어지지 않는 갈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그렇게 이 세상의 고달픈 삶을 지나가는 동안에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의 눈에 보이는 물질과 우리의 형통한 삶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되고 오직 영원한 안식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고 확신하며 그 안식을 소망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당신의 생명을 이 땅에서 취하실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인지를 생각하십시오.
성공을 위해 그렇게 피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영원한 안식을 바라고 소망하는 삶일 수 있습니까..
신자의 삶을 보면 그가 진정으로 바라고 소망하는 가치가 보여야 합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영원한 나라를 갈망하는 모습이 그리스도인에게서 나타나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도 우리가 꿈꾸는 영원한 나라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삶을 들여다 보아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세속의 가치를 위해 그렇게 분주하고 피곤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일 수 있으며 그가 진정으로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는 자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길을 가는 나그네가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할 때도 그는 고향의 집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생각에 잠기게 되듯이 신자는 주일이라는 쉼표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바라고 그리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를 마무리 하면서도 그냥 피곤하여 잠에 골아 떨어지는 자들이 아니라 잠시라도 돌아갈 본향을 바라고 그리워하며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여 그 약속을 붙들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영혼에 새힘을 얻어 또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에 속한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성공과 부를 갈망하며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자기를 지키려는 욕망을 따라 모든 것을 합리화 하고 핑계하면서 살아가면 그것으로 진정한 안식과 평안과 행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으십니까..
신자가 이 땅의 것에서 참된 안식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신자가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우리의 그릇된 생각들을 깨뜨려 가십니다.
결코 그러한 가치에 참된 안식이 없다는 것을 물질의 손실과 궁핍을 통해, 사람들과의 힘든 관계 속에서 병들고 지치는 우리의 육체의 고통 속에서 그것을 깨달아 가도록 섭리하십니다.
 
물질의 부요함에 대한 욕망, 성공에 대한 욕구를 합리화 하면서 하나님과 그 은혜의 자리를 멀리할 때 결국 영혼의 참된 평화와 안식을 당신은 잃어버리게 됨을 잊지 마십시오.
점점 우리의 영혼은 힘을 잃어가고 참된 마음의 평강과 안식 없는 영혼의 메마름 속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정은 점점 더 고통당하고 파괴되어 가고 말 것입니다.
 
어떤 일들이 점점 어려워 질 때, 우리의 상황과 형편이 점점 기울어지고 실패가 반복될 때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되겠지, 언젠가는 잘 되겠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지금은 내가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로구나.
다시 간절하고 열렬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를 갈망해야 하는, 내 영혼이 다시 깨어나야 하는 때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을 바라고 소망하며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영혼의 참된 안식 조차도 포기하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라고 했습니다.
‘힘쓸지니’ 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문은 ‘재촉하다’, ‘열심히 노력하다’ 라는 뜻의 강한 의지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노력을 다해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며 이 땅에 거하는 동안에서 영혼의 참된 안식을 추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영원한 안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믿고 소망하면서 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감을 훼방하고 방해하는 모든 사탄의 유혹과 세상에서의 시험을 이겨 나아가는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했고 이 분명한 흔들림 없는 푯대를 향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해 좇아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장 10~1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구원 받은 성도의 삶에 대해서 이 땅에서 번영과 형통과 행복만을 꿈꾸며 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 받은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일지라도 그렇다면 더욱 힘써 그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갈 것을 거듭 요청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굳게 지키며 깨어 긴장하며 마침내 영원한 안식에 이를 때 까지 영원한 안식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힘쓰며 살아가야 할 삶입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땅에서 아무 걱정없이 가족 모두의 건강을 소망하며 그저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치열하게 영원한 가치를 생각하며 그 궁극의 안식을 바라보며 힘쓰고 애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히브리서는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어떤 가치를 위해 어떤 대상을 위해서 우리의 힘을 소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힘쓰는 그 대상과 목적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