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묵상, 설교 한토막88

2022.06.23 07:14

hi8544 조회 수:1465

<묵상, 설교 한토막>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성장해 나아가야 합니다.
아기가 태어났어도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가 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도 계속해서 진리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성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 고난과 시련과 역경을 주시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찬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우리를 성장시켜 나아가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성찬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성도가 한 평생 하나님을 신앙하는 가운데 그가 얼마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과 개인적으로 성경을 묵상하는 일과 그리고 마음을 다해 준비된 성찬에 참여하는 일에 노력했는지에 여부는 고스란히 그가 얼마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가의 문제에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참 성장하는 나이에 영양을 잘 공급 받으면 성장이 촉진 될 수 있고 또 성실한 공부와 지적인 탐구가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성숙 시키듯이,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을 계속 깨달아 가고 마음을 다한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신령한 은혜를 계속 공급 받은 사람의 신앙과 그의 인격은 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린 아이같은 인격과 행동을 가진 사람을 우리가 보듯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전혀 성숙한 믿음이 아닌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며, 전혀 다른 지체를 섬기거나 희생하거나 함께 연합을 이루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유아독존적인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가 교회를 다닌지는 오래 되었어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모든 수단들을 통해서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올바른 영의 양식을 공급 받으며 바른 은혜 가운데, 은혜의 합당한 방편안에서 계속 성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장의 원리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깊은 깨달음, 그리고 성찬을 통해서 주시는 신비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오는 신령한 기쁨과 은혜의 공급, 이러한 것들이 잘 이루어지는 곳을 결국 참된 교회로 규정한 것입니다. 참된 교회의 표지에 이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지나온 신앙의 여정을 돌아 보십시오.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고 은혜 가운데 성장해 오신 시간들이었는지, 어떤 이유에서든 그 성장이 멈추고 지연되었던 시간들이었는지, 앞으로의 신앙 속에서는 이러한 은혜와 신앙의 성장을 더욱 사모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셔야 하리라 믿습니다.

다음으로,
‘. 주님과 연합과 교제가 확고해 집니다..’
라고 성찬의 의미를 이어 설명합니다.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은 자주 만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 자주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함께 공감하고 통하는 것들이 많이 있을 때 사람과 관계는 돈독해 지고 연합은 견고해 지기 마련입니다.
죄인들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두고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며 교제하는 것을 즐거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영적으로 느슨해 지고 무기력해 지는 것을 언제나 사탄은 획책하며 그로 인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무기력해 지도록 만드는 일들을 우리 안에서 행합니다.
성찬은 언제나 이러한 위험성으로부터 우리로 하여금 더욱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을 견고하게 하고 영적인 교제를 견고하게 해 주는 우리를 잡아매는 끈과 같습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16절에,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찬이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는, 즉 연합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곧 신자와 그리스도의 사이의 영적인 연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계시는 주님은 그러나 성령과 더불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가운데 우리는 주님과 영적으로 깊이 연합되는 신령한 교제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행위와 그 시간을 그처럼 여겨야 하고 그렇게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교통의 장으로 성찬을 생각하고 마음을 다해 준비하며 그 시간을 사모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할 때 우리는 더욱 단장을 하고 우리 자신을 이쁘고 멋있게 격조있게 꾸밀 것입니다.
그 만남이 소중하고 그 만남에 오게 될 분이 나에게 특별한 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찬을 준비하는 성도의 마음은 그와 같아야 합니다.
주님과 갖는 신비한 연합과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그 시간으로 우리가 맞이할 성찬식을 생각하면서 가장 귀한 이 영혼의 초대를 마음과 영혼을 다해 준비한 후에 그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만남을 갖고 나면 또 다시 그 소중한 만남이 그리워지고 다시 그 분을, 그 대상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이 마음에 가득 차게 되는, 그 관계가 더 없이 소중하고 이것을 굳게 지키고자 하는 그 마음이 바로 성찬에 나아가는 신자들 안에 생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성찬의 의미는 이어,
’..성찬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헌신뿐만 아니라..’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찬을 제정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각난 빵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너희를 위하여 점점이 에인 내 살점들 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뜯겨진 빵 조각을 통해서 주의 죽으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롯이 당신을 향한, 우리를 향한 사랑이심을 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성찬에 나아가는 자는 빵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을 손에 받아 들며 이것이 나를 위해 찢기어진 주님의 몸이로구나 하는 감격과 감사의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잊을 길이 없는 그 깊은 감사의 감동은 반드시 우리 안에서 그것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반응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신자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종일 데이트를 하고 교제를 나눈 이후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더 열렬히 그 사랑을 지키고 더 많이 서로에게 진실하고자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연인이 하루 종일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헤어지자 마자 다른 이성에게 전화를 하고 또 다른 남자와 여자의 품으로 달려간다는 말입니까..

깊은 사랑의 교제와 교통은 서로에 대한 더 충실한 의무감과 책임감을 갖게 하듯이 신자는 성찬을 통해서 주님과 깊은 사귐을 가질 때 이제 더욱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결연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 당연한 반응입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14~16절에,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우상숭배 하는 일을 금해야 할 근거가 바로 성찬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동시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음녀나 하는 짓 이듯이 성찬에 나아가는 자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영적인 간음이 됨을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눈 자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께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있는 모든 우상의 요소들을 제하고 이같은 은혜를 주신 주님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를 위해 더욱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 뜻을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찬 사경회, 웨스트민스터 대교리 문답 168문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