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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07

2022.12.09 07:15

hi8544 조회 수:459

<묵상, 설교 한토막>

히브리서는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라고 정의했습니다.
견고히 잡아야 할 것이, 그런 가치가,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런 삶이 신자에게는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의 삶속에는 시험과 고난이 계속해서 찾아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시험과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감추어진 모든 죄가 참된 회개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고 믿음이 더욱 성장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그 믿음의 진정성이 우리 안에 더 깊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고백과 삶이 일치되지 않는 믿음은 구원에 이를 수 없는 믿음이기에 하나님께서는 평생의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것을 조율해 나아가십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과 삶의 일치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로 우리를 빚어 가시는 일들을 우리의 생애 속에서 오늘도 이루어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의 히브리인들은 계속되는 회유와 박해 속에서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어지고 확신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히브리서는 그들에게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우리의 거룩한 자랑을 굳게 붙잡았으면, 이라는 조건을 붙이면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며 그 집에 속한 자들임을 증명하게 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구경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소망의 담대함과 그리고 그 자랑을 우리가 굳게 붙잡아야 한다고 말씀하면서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라면 그렇게 되어질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히 다스리시는 집입니다.
그러므로 그 집에 들어가는 자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로 그들은 언제나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진리 안에서 깊이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세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셨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며 이 진리를 굳게 믿는 자들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집의 사환으로 충성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 충성하셨다는 것을 알아 그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지키는 자라야 그가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히브리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건문은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집에 속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끝까지 붙잡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은 끝까지 보존되는 믿음이기에 참된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은혜의 상태를 유지하게 되고 잠시 은혜가 식어지고 멀어질 수는 있어도 그 은혜와 단절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코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자리에서 결국 떨어져 나가게 된다면 그는 다시 돌이켜 회개하여 돌아올 수 없는 자임을 스스로 증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견인은 진정한 믿음의 부인할 수 없는 열매이며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진 지체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표식입니다.
따라서 이 조건문을 통해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두려움 없는 신앙의 분명한 고백과 그리고 소망을 유지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비록 환난과 박해와 회유 속에서 믿음이 연약해 질 수는 있어도 히브리서는 그런 신자들에게 더욱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면 능히 승리할 수 있지만 뒤로 물러가면, 다시 유대교로 회귀 하든지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아가 길로 행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경고 함으로서 그들의 영혼을 깨우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가 우리를 부르실 때까지,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신자는 이 땅에서 인내하는 가운데 더욱 성화되어 나아가고 우리가 믿는 모든 도리와 소망을 굳게 붙잡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진지한 자세라는 사실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가치와 그 영광을 알아 그것을 굳게 붙드는 자, 그 지워지지 않는 소망과 마음의 확신에서 비롯된 담대함과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주목받는 유력한 자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빛나는 면류관을 받아 쓰게 될 자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으로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는 자, 그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될 자들이라는 것을 히브리서는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오늘의 모든 신자들에게 이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한가롭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분량만으로 스스로 만족하고, 신앙이 내가 기준이 되고 나의 형편과 처지가 내 행복이 언제나 우선이 되어 그렇게 신앙의 성장없이 종교적 습관처럼 교회를 다니는 것은 여러분의 신앙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코 주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뜻을 세워서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진리의 가르침을 따라서 오늘도 우리의 모든 삶으로 그것을 굳게 붙드는 자들이 되십시오. 
그렇게 신앙이 우리의 행위와 삶으로 연결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자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주께 드릴 시간을 떼어 두고 그 나머지로 여러분이 해야 할 일들을 하십시오.
그것인 진정한 지혜이고 믿음이며 주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의 삶입니다.
더 나아갈 수 없는 환경과 상황을 인내하고 극복하며 더욱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그 믿음을 성도는 바라보아야 하고 그것을 소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시대건, 어느 곳에서든 그렇게 안락하고 편안하게 주를 좇았던 믿음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에는 분명히 큰 배도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주를 사랑하는 것 같으나 결국 자기 사랑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자들이 대거 바른 신앙에서 이탈하게 될 것입니다. 
끝내는 넓은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며 견고히 붙잡지 않게 되는 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며 그렇게 올바른 신앙에서 멀어져 가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 삶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까..
 
한 해가 거의 다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피곤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시간이,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으며 조용한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시간조차도 없었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삶을 스스로 합리화 하겠습니까..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우리의 더딘 성화의 발걸음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뭐라고 변명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깨어나십시오. 
언제까지 잘못된 것을 붙들고 잘못된 우선 순위를 따라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점점 힘겨워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분주하게,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은혜를 주깨서 우리에게 주심을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렇게 살기를 구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자신의 영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 그가 지금 가장 심각한 상황 속에, 가장 위험한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히브리서의 이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생각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붙잡아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교불가의 가치를, 그가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위대한 충성을 하나님게서 우리의 영혼 깊이 각인시켜 주셔서 주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까지 이 믿음을 굳게 지켜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다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