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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401 (히 13:1-5)

2023.09.26 08:25

hc 조회 수:342

<묵상, 설교 한 토막>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온전히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 조차도 사랑할 수 없어 스스로에게 깊이 절망하게 될 때 결국 목숨을 끊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우리 안에는 없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사랑으로, 그 사랑의 힘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끌어안기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그 십자가를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자기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그가 가진 사랑의 출발점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인간이 가진 이기적인 사랑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한 평생을 지나가는 동안 우리와 잘 맞는 사람을,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할 만하다고 여길 만한 사람들을 몇 명이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사람을 찾았다고 여겨서 그를 만나 그렇게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평생을 서로에게 맞추어 가는 고통스러운 훈련을 해야 합니다. 피를 나눈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잘 맞지 않는 존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타락한 이기적 본성을 가진, 자기애로 둘러 쌓여 있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하나 되기 위해 주의 은혜와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에베소서 4 3절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하게 실천되지 않는 것이 바로 주 안에서 하나 됨입니다. 그러하기에 힘써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성경은 힘주어 말씀합니다. 여기서 노력이란 인간적인 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하나 됨을 위해 자신을 깨뜨리며 영혼을 품기 위해 부단히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가 미워집니까.. 그가 없으면 좋겠다고 여겨지십니까.. 우리의 마음을 주께 드리며 간절히 이 악한 마음을 버리고 그를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바로 그 지점에서 신자와 불신자가 극명하게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끌어안는 사람, 그를 위해 기도하며 손을 내미는 사람이 신자이고 차갑게 돌아서서 영원히 보지 않을 것처럼 냉대하며 냉소적인 태도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 자가 바로 불신자입니다. 저절로 사랑할 수 있고 저절로 하나 되는 법은 없습니다. 부단히 주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며 힘써, 최선을 다해서 하나 되기를 구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결국 이루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 그 하나 됨을 지켜 내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계명을 이 명령을 지켜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 속에서 가시 같은 날카로운 사람들을, 지체를, 가족을 만나도록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쉽게 갈 수 있는 구원과 성화의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우리가 깨어지고 부숴지고 낮아져야 갈 수 있는 길이 믿음의 길이고 그 여정임을 잊지 마십시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모습 속에는 사랑할 이유보다는 사랑하기 힘든 이유가 점점 더 많이 발견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물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부단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덕을 세우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가진 이 연약함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쓰러지게 만들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계속해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할 수 있기를 간구하며 이 대의를 지켜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대사들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늘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도 사랑하기를 기도하십시오. 저절로 되는 사랑은 없습니다. 모든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그 사랑의 한계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지점까지 우리를 몰아가십니다. 부모라도 자식이라도 형제와 자매라도 더 이상 내 힘으로 사랑할 수 없는 그 절망의 끝에 우리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네가 가진 사랑이 아니라, 내가 네게 주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의 초라한 한계를 가진 사랑을 거두어 내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고 이를 위해 기도하게 되면 이제 형제와 자매들의 흠이 작게 보이게 됩니다. 오직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가 가진 허물과 연약까지도 사랑하고 이해하며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오직 한번 뿐인 인생 속에서 그런 은혜를 경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사랑할 수 없고 하나 될 수 없는 사람이고 지금은 나 조차도 감당키 힘든 시간을 지나가고 있음에도 그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 사랑하기 위해 더 하나 되기 위해 힘쓰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강권하심을 우리는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최악의 순간에서 조차도 사랑하고 연합하며 그 관계를 지속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우셨던 그런 경험들이 신자의 삶 속에서, 우리의 생애 속에서 분명히 훈장처럼 우리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행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용기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물리치거나 부정하지 마십시오. 그 마음을 주실 때 우리는 반드시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도 이 같은 교훈과 권면을 들어야 했다면 오늘을, 이 평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더욱 강력하게 우리에게 이 말씀을 지켜 행할 것을 요구하시지 않겠습니까.. 신자가 무슨 자존심이 그렇게 강합니까.. 그것이 자랑입니까.. 무슨 고집들이 그렇게 셉니까.. 왜 그렇게 자주 혈기를 부리고 화를 내십니까..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을 꺾으실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모두 부질없는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자기가 만족되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는 불평, 원망, 분노 같은 추악함입니다. 신자는 이러한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이러한 우리의 죄악된 모습들을 성령의 불로 태워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인 이념이나 사상에 지나치게 치우치고 몰입하여 그로 인해 양분되어 서로 칼날처럼 대립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자들이요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상도 이념도 그 모든 배후에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이 그 뜻대로 교회와 지체와 가족들을 분열시키는 도구로 이 모든 것들을 사용하는 것임을 왜 모른단 말입니까.. 편견이나 아집, 자기 교만과 자존심과 이기심 때문에 이 성경의 명령과 계명에 복종하려 힘쓰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적어도 성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가슴을 치며 이 진리에 순종할 수 있도록 나를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