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아침에 띄우는 목양서신206

2018.11.14 18:42

solafide1004 조회 수:492

<아침에 띄우는 목양 서신>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막15:30-32, 개역한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스스로 네 자신부터 구원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왜 구원하지 못하느냐고,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노라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그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죄인들의 생각의 큰 차이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문제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일, 자신이 손해보지 않는 일, 자신에게 무엇이 더 유익이 되는지를 따지는 것만이 그들에게는 진리의 가치이며 그들이 바라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성경은 자신을 사랑하는 길, 자신을 위하는 길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복음을 위해, 영원한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부인하는 길을 가르쳐 주는 진리입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만 지대한 관심을 갖습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도, 교회를 다니는 이유도 모두 철저하게 이기적인 목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어려움 속에서 건져내는 일보다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를 버리는 믿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15:12-14)


자기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조금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나’를 뒤로 미룸으로 ‘우리’를 먼저 위할 수 있는 믿음으로 우리가 더 성장해 나아갈 수 없다면 우리의 신앙도 결국 내 자신의 구원의 굴레 안에만 갇혀 있는, 그 누구도 생각지 않는 옹졸함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너를 구원해 보라. 네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것이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버리신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자기 백성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으라고 하신 말씀이 여전히 우리에게는 막연하고 관념적으로만 여겨집니다.


나를 위함이 아닌 지체들과 타인은 위한 삶이 언제나 우리에게서 발현될 수 있을까요..

주께서 부디 우리를 붙들어 주가 걸어가신 그 길을 뒤따르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